[데스크 칼럼] '무책임의 사슬' 끊는 새해 돼야

김동욱 중기과학부장
김동욱 한국경제신문 기자
바닥에 드러누워선 보이지도 않는 난간의 뒷부분을 닦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가 없어도 아파트 청소를 담당하는 관리인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맡은 일에 충실했다. 지하철 역사에선 열차가 드나들 때마다 누가 보건 말건 역무원은 허공에 수신호를 반복하며 안전을 챙겼다.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당시, 일본인의 특성을 규정짓는 단어로 ‘책임’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세키닌(책임)’이란 단어의 무게는 일본 사회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때론 그 중압감이 지나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회의를 반복하는 게 일본 사회의 그늘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일본어 사전에는 ‘책임을 지다’라는 뜻으로 ‘배를 가르다(腹を切る)’라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등재돼 있을 정도다.

보기 힘든 '책임의 무게'

비록 요즘엔 ‘한물간 나라’ 취급받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고, 각종 안전사고 없이 빈틈없이 굴러가는 데는 일본인 특유의 책임감이 단단한 기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말 대청소’로 분주하던 평범한 일본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충실하게 책임을 수행하던 모습을 본 강렬한 기억은 지난 연말 무책임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 리더들의 행태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권리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국회는 정쟁에 매몰된 끝에 반도체 등 국가 첨단산업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미국, 대만 등 경쟁국에 비해 크게 뒤처지게 했다. ‘8시간 추가 연장 근로제’ 일몰을 방기하면서 수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자영업자를 사지로 몰았다. 이태원 대규모 압사 사고의 책임은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경찰 고위직은 건너뛴 채 경찰서와 소방서의 말단 관리자에게 돌리는 모습이다.

책임 회피, 무책임의 연속은 사실 낯선 모습이 아니다. 도의적, 사회적, 법적 책임을 지는 모습은 그간 거의 보지 못했다.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 책임을 피하기 위해 통계 왜곡이 서슴지 않고 자행됐고, 다락같이 부동산 가격을 올려놨던 이들은 끝까지 입을 닫고 있다. 표류한 국민이 북한군에 의해 총살되고 시체가 불에 태워져도 그 누구도 책임을 졌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성숙한 사회의 전제조건

책임이 들어설 자리를 잃으면서 수많은 의혹은 오랜 기간 풀리지 않고 있다.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현역 국회의원의 체포동의안은 집안에서 수억원의 현찰이 나왔음에도 동료 의원들이 무기명 투표 뒤에 숨어 부결시켰다. ‘대장동’과 ‘백현동’의 초대형 부패 의혹 수사는 ‘정치 탄압’이라는 석연찮은 항의에 묻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최근 책임 부재에서 기인한 크고 작은 사고도 부쩍 늘었다. 제2경인연결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수서고속철도(SRT) 열차 운행 차질 같은 안전관리 미흡에 따른 사고를 비롯해 북한 무인기가 수도권을 유유자적 훑고 지나가는 일도 발생했다. 모두 나사가 빠진 듯한, 평소의 관리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은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새해는 낡은 ‘무책임의 사슬’을 끊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고,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선 사회 지도층의 무책임 상태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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