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뭡니까? 재산은요?"…이젠 '집주인'도 면접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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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하락으로 이젠 집주인이 '을'"세입자들이 전셋집 구하기 전에 집주인에 대해서 '주인 직업은 무엇인지', '재산 상황은 어떤지',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등등 이것저것 물어봐요. 아무래도 요즘 전세 사기도 많고 피해를 보는 사례가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공인 중개 대표)
2020년 7월 임대차법 시행 당시…세입자 면접까지 봤는데 '반전'
"임대차법 개선 필요…시장 논리에 맡겨야"
2년 6개월 만에 전세시장 분위기가 뒤집혔다. 2020년 7월 새 임대차법이 전격 통과된 이후 전세 물건이 씨가 마르면서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을 가려 받는 '세입자 면접'이 시장에 빠르게 퍼졌지만, 이제는 반대로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을 꼼꼼하게 따져보고 집을 구하는 '집주인 면접'이 나타나고 있다. 전세 사기 등이 연달아 터지면서 불안감이 확산한 탓이다.2일 빌라(다세대·연립) 등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 공인 중개업소에 따르면 세입자들이 집주인 개인 사정을 고려해 집을 구하고 있다. 집값 급등기 전세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최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쏟아진 탓이다.
세입자들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열람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집주인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보증금을 돌려줄 정도의 재산은 있는지', 집을 구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집주인 성격은 어떤지' 등도 물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대 사회초년생 최모씨는 "연일 TV나 신문 등에서 전세 사기와 관련된 내용들이 쏟아지질 않느냐"며 "집을 구해야 하는데 불안한 게 사실이다. 마땅히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없으니 공인중개사를 붙잡고 묻는 방법 밖엔 없더라"고 했다.화곡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세 사기와 관련한 사건이 보도되면서 특히 집을 구해본 경험이 적은 20대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경우도 있다"며 "등기부등본이 깨끗한 집인데도 '보증금 떼이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표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정보 때문에 자세한 얘기를 전달할 수는 없다며 난감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집주인은 불쾌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8월 시장에서 예상했던 '전세 대란'은 일어나지 않으면서 물량이 어느 정도 있는 데다 전셋값 하락으로 세입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여서다.
빌라 1채를 가진 60대 강모씨는 "세입자들이 너무 과하게 물어보니 사실 기분이 나쁜 게 사실"이라면서도 "요즘 같은 상황에 세입자를 구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 때문에 최대한 협조하는 편"이라고 했다.이런 상황은 새 임대차법이 도입된 2020년 7월 이후와는 전혀 딴판이다. 임대차법이 전격 통과된 후 가뜩이나 부족한 전세 물건이 씨가 마르면서 '세입자 면접'이 시장에서 빈번하게 나타났다.
전세 계약갱신청구권 등이 포함된 임대차법이 도입되면서 분쟁의 소지가 커지자 집주인들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소위 '얘기가 통하는' 세입자를 구하고 싶어 해서다. 이에 집주인들은 세입자들의 직업은 물론 세를 구하는 이유, 가족 관계 등까지 물어보기도 했다.전세난이 점점 심해지면서 계약 당일 전셋값을 수천만원 올리는 집주인이 있는가 하면 전셋값을 더 주겠다는 세입자가 나타나면 기존의 세입자와의 가계약을 파기하고서라도 돈을 더 준다는 세입자와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었다.화곡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시장 분위기가 점점 변하고 있다"며 "집주인이 떵떵거리면서 세입자를 받던 분위기가 몇 년 새 뒤집혀 집주인이 오히려 세입자 눈치를 보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전세 시장을 과도하게 출렁이게 만든 요인인 '임대차 3법'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7월 도입했다. 당시 야당과 전문가들은 시장에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법 도입을 강행했다. 2년이던 임대차 기간은 '2+2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이 제 기능을 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법을 시행한 취지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전셋값이 급등할 때 만들어진 법으로 규제의 성격이 강한 게 사실"이라면서 "현재는 법이 시행됐던 당시와 시장 환경이 크게 변했다. 어떤 시장이 와도 유연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장은 시장 논리에 의해 움직이도록 둬야 한다는 점"이라면서 "법의 과도한 개입은 시장을 망치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