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지표 속속…美 금리인상 끝 보인다 [정인설의 美증시 주간전망]

유럽 인플레 지표, FOMC 의사록 주목
미국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40여년만의 최악의 인플레이션도 정상적이지 않은데 인플레이션도 형태도 전무후무합니다. 물건값이 오르는 인플레가 일반적인데 지금은 서비스 가격이 인플레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비슷하지만 미국의 상황이 가장 심각합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사람의 소중함, 노동의 가치가 이렇게 두드러지게 부각될 때가 있었나 할 정도입니다. 노동경제학자 칼 마르크스가 울고갈 법합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가 실현되고 있으니 그야말로 르네상스형 인플레이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인문학이나 마르크시즘 차원에서 보면 훌륭해 보일 수 있지만 주류 경제학 관점에서 보자면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나"라고 한숨이 나와야 마땅합니다. 어찌 이렇게 수급 예측을 잘못해 노동시장을 완전히 꼬여버리게 만든 것에 자책을 해야 당연합니다. 불황이면 당연히 일자리가 모자라야 하는데 일자리는 넘쳐나고 엉뚱하게 사람이 부족한 형국이라뇨.

어쩌다 이런 지경이 됐고 해결할 묘책은 없을까요. 오늘 이 시간엔 꼬여버린 미국 노동시장을 중심으로 이번 주 글로벌 주요 이슈와 일정을 정리하겠습니다. 때마침 새해부터 미국 노동시장의 주요 지표들이 속속 나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늘 일자리 부족으로 신음해왔습니다. 미국은 세계의 시장이지 공장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물건을 싸게 조달해 소비하면 그만인 나라였습니다. 달러의 발권력과 적자재정 등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빚과 기축통화국 지위에 의지하다 보니 돈보다 일자리가 늘 부족했습니다. 노동력이 남아돌았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모든 대통령들이 일자리 창출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상황입니다. 미국 노동수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미국 기업들의 채용공고 수입니다. 올들어 1100만개를 넘었다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1000만개가 넘습니다. 미국 정부의 돈풀기 정책으로 기업들의 투자가 늘었고 그로 인해 여기저기서 구인수요가 폭증한 영향입니다. 반대로 구직수요는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잉여 노동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실업자 수입니다. 이 수치는 600만명 정도됩니다.
산술적으로 약 400만명의 노동력이 모자랍니다. 그래서 구직자 1명당 1.7개 또는 1.9개의 일자리가 남아돈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건 팬데믹 영향이 가장 큽니다. 팬데믹 시기 조기은퇴한 인력이 200만명입니다.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100만명 가량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팬데믹 이후 감소한 이민자 수가 50만명 정도 됩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퇴장했습니다. 이른바 비경제활동인구가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도 떨어졌습니다.

노동공급 급감한 이유


빡빡한 노동시장을 풀 해법은 간단합니다. 노동공급을 늘리면 됩니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수도꼭지 틀어 물을 공급하는 문제와 달리 아주 난해합니다. 전 세계의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팬데믹으로 죽은 사람을 어찌 살리고 빨리 은퇴해 제2의 삶을 살겠다는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돌리겠습니까.
남은 건 이민입니다. 이민은 난민이나 불법이주 그리고 합법이민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합법이민을 중심으로 얘기하겠습니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 수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1~2010년 미국으로 들어온 순유입자 수는 연 평균 89만명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2011~2020년엔 그 수가 48만명으로 줄었습니다. 10년 새 이민자 수가 반토막 난 것입니다.

이민이 줄어든 건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입니다. 미국에 있던 이민자들이 일자리가 없어 본국으로 돌아가던 때입니다. 미국 내 일자리 수요가 줄어드니 해외에서 이민이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미국 정부의 반이민정책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이민자들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불법이민에 대한 단속도 늘었고 합법이민으로 이어지는 비자 발급 건수도 급감했습니다.

주목받는 캐나다식 해법

미국 취업 비자 중 대표적인 건 H-1B와 H-2B 입니다. 고학력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H-1B를 받으면 미국에서 3~6년 동안 일할 수 있습니다. 갱신도 가능하고 나중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H-2B비자를 발급받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비농업 분야에서 9개월까지 일할 수 있습니다. 주로 식당이나 육가공 공장, 건설현장 등에서 일합니다. 현재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한 대표적 분야입니다. 2019년만 해도 식당이나 숙박 등 접객 부문의 노동자 중 22% 가량이 이민자였습니다. 2021년말엔 18.4%로 떨어졌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외국인 상대 비자 발급 업무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영향이 큽니다. 지난해부터 재개됐지만 팬데믹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미국 대사관이 비자 업무를 정상화한다 하더라도 이민자 수를 늘릴 수 없습니다. 이 비자를 늘리려면 미국 이민법을 바꿔야 합니다. 미 의회는 H-2B비자를 연 6만6000개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2021회계연도 2만2000개의 비자가 추가됐지만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공백이 180만개에 달합니다.
미 의회는 H-1B비자도 연 8만5000개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6만5000개는 학사 이상 학위소지자, 2만개는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 대상입니다. H-1B비자는 늘 수요초과 상태입니다. 2022회계연도에도 H-1B비자 신청자 수는 30만이 넘었습니다. 미국 대학에 등록한 외국인 학생 수도 91만4095명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민 관련 여론입니다. 특히 친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이 이민에 인색합니다. 내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다행히 최근에 이민 관련 여론도 바뀌고 있다는 결과가 조금씩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합법 이민에 대해선 우호적입니다. 갤럽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70%가 이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캐나다식 해법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캐나다는 노동부족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 이민을 늘리는 한편 여성과 청년층의 노동시장 참가를 유도하고 자동화늘 늘리고 있습니다.


파월의 역할은 노동수요 억제

노동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이민을 늘리는 건 정치적 영역에 해당합니다. 미국 의회와 백악관이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Fed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바로 노동수요를 줄이는 겁니다. 기업들이 사람을 덜 뽑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당연히 거시적으로 경기하강 또는 경기침체를 겪어야 하고 미시적으로 기업 이익 감소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습니다. 높은 금리를 오랜 기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 금리 인하는 없다고 쐐기를 박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핵심 지표는 구인과 고용보고서

미국의 난해한 고용시장 상황을 볼 수 있는 보고서가 잇따라 나옵니다.

우선 4일(현지시간)에 미국의 11월 구인·이직 보고서가 발표됩니다. 여기서 기업의 채용공고 수가 중요합니다. 1100만개를 넘었던 빈 일자리 수가 줄어서 10월에 1033만개까지 감소했는데요. 이번에 1000만개 밑으로 내려가면 빡빡한 노동시장이 조금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올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건 6일에 공개되는 12월 고용보고서입니다. 단기적으로 최대 관심사는 시간당 임금상승률입니다. 빈 일자리가 선행지표라면 임금상승률은 그 중간결과입니다. 11월 임금 상승률이 전년 대비 5.1%였는데요. 5% 아래로 떨어진다면 노동시장이 개선된다는 청신호로 해석됩니다.
고용지표 외에도 여러 일정이 있습니다. 4일에 나오는 12월 FOMC 의사록을 챙겨봐야 합니다. 소수 발언 형태라도 금리인상 경로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매파적 또는 비둘기적 발언이 있으면 증시에 영향을 줄 전망입니다.

미국시간으로 6일부터 8일까지 미국경제학회가 열립니다. 여기서 석학들이 내놓는 미국 경제 전망이 관심사입니다.
이밖에 6일에 나오는 유럽의 인플레이션 지표도 주목됩니다. 지난달부터 10% 초반대로 둔화됐는데 이번에 9%대로 내려오면 시장에 긍정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인플레 3막'이 해피엔딩이려면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모두 불안해했습니다. 불황이 시작될 것으로 우려했습니다. 2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전시 체제에서 평시 체제로 전환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는 살아났고 연착륙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그럴 희망은 있습니다. 살인적 수준의 인플레이션은 계속되고 있지만 조금씩 완화돼 인플레이션 3막을 맞이했습니다. 인플레이션 1막은 "인플레는 일시적"이라고 했던 파월의 망언이 나온 시기입니다. 2막은 전쟁으로 시작된 푸틴발 인플레, 시진핑발 인플레였습니다. 그리고 3막이 현재의 희한한 서비스 인플레, 임금발 인플레입니다.
3막은 노동시장이 주목받는 때입니다. 그걸 풀려면 정치와 경제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이민 확대 외에 단기적인 해결법은 사실상 전무합니다. 미국 여론이 좀 더 이민에 우호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과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이 한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이민 아니면 인플레를 풀 수 없다"는 생각이 확산될 때, 인플레가 오롯이 노동시장 때문이라고 인식될 때 가능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선이 다가올 수록 그럴 확률은 높아질 전망입니다.

워싱턴=정인설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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