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선거구제' 화두 던진 윤 대통령…김진표도 "4월까지 선거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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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에 소선거구제 바뀌나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각각 신년 화두로 국회의원 선거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꺼내 들었다. 정치권에서도 1988년 도입 이후 35년간 이어져온 소선거구제를 이번에는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6월 항쟁을 통해 만들어진 ‘1987년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尹 "국회의원 대표성 강화
지역 특성 따라 2~4명 선출"
金, 양당에 개정안 제출 요구
'정치 양극화' 해법 부상
양당제·지역주의 완화 기대
여야 모두 "불리할 것 없다"
尹 “중대선거구제로 대표성 강화”
윤 대통령은 2일 공개된 언론 인터뷰에서 “중대선거구제를 통해 국회의원의 대표성을 보다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모든 선거구를 중대선거구제로 하기보다는 지역 특성에 따라 한 선거구에서 2명, 3명, 4명을 선출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집권 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여당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소선거구제로 야기되는 극한 갈등에 문제의식을 피력해 왔다”고 전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의원총회 등을 통해 선거제도에 관한 당내 의견을 이른 시간 안에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위해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여야 위원들을 의장 공관으로 초청해 연 만찬에서 “총선을 1년 앞둔 2023년 4월까지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김 의장은 의원들에게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포함한 선거법 개정안을 다음달까지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되면 국회의원 전원회의를 열어 의원들의 동의를 구한다는 것이 김 의장의 복안이다. 전원회의는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열리고, 하루 2시간씩 이틀간 진행할 수 있다. 김 의장은 “(회의에서) 국회의원 300명 중 200명의 찬성을 받으면 그 안대로 선거를 치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과 김 의장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김 의장은 “오늘 청와대 신년 하례식에서도 대통령께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도와달라고 당부드렸다”고 말했다.
여권 수도권 부진에 탄력
선거구당 한 명만 당선되는 현행 소선거구제는 선거비용이 적게 들고 선거관리가 수월하지만 사표가 많이 나와 민의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견고한 지역 구도와 양당제도 소선거구제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반면 중대선거구제는 선거구 규모에 따라 여러 명의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 그만큼 사표가 줄어든다. 영남, 호남 등 특정 정당의 지지가 두터운 지역에서도 다른 정당 출신 당선자가 나올 수 있어 다양한 정치적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다.선거구제 개편이 전통적으로 야권의 의제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영호남 지역 구도를 약화시킬수록 민주당이 얻을 수 있는 의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제안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2012년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의미 있는 수도권 의석을 얻는 데 실패한 여권으로선 중대선거구제가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경기도에서 292만 표(득표율 41.1%)를 기록했지만 지역구 의석수는 7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83만 표(53.9%)로 경기도 59개 의석 중 51개를 휩쓸었다.여야 모두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는 지점이 생기면서 선거제도 개편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관측이다. 이날 정치권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통해 양당제와 지역 구도를 타파해야 한다”고 호응했다.
전범진/노경목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