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국민과 전기 사용자를 구분하라

'탈원전 실패'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전 경영 실패도 전기료 인상 요인

박주헌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전력이 지난달 말 올해 1분기 전기요금을 ㎾h(킬로와트아워)당 13.1원 올린다고 발표했다. 작년 한 해 한전 적자가 약 30조원에 달했으니 요금 인상은 불가피했다. 예상보다 인상 폭이 작았다. 고공 행진 중인 에너지 가격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는 가정 아래 한전 적자 해소를 위한 인상 폭이 50원 정도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세계 에너지 시장의 극적 반전이 없다면 올해 몇 차례 추가 인상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작년 인상분 19.3원과 올해 인상분을 모두 합해 2년간 인상 폭이 무려 약 70원에 달해 2022년 초 요금 108.1원 대비 65%가량 오른다.

오랜 세월 값싼 전기요금에 익숙해진 모든 경제주체는 크게 당황할 것 같다. 지난달 말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전기요금 인상을 발표하면서 “유례없는 한파와 높은 물가 등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 전기, 가스 요금 조정 방안을 말씀드리게 돼 마음이 무겁다”며 고개를 숙였다. 현직 산업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지고 고개를 숙일 사안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인상의 원인을 모두 세계적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돌리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 이번 인상 원인에는 지난 정부 탈원전 정책 실패와 한전의 경영 실패도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분석은 이미 지난 정부 내부에서도 제기된 적이 있다. 산업부가 2017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탈원전 추진으로 2030년까지 전력 구입비가 140조원 늘어나고, 전기요금은 매년 평균 2.6%씩 인상돼 2030년에는 ㎾h당 150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2022년 전기요금을 124.53원으로 전망했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2022년 말 실제 전기요금(120.8원)과 거의 일치했다.

따라서 보고서의 전망치가 에너지 가격 변동 효과를 제거하고 순수 탈원전에 의한 인상분만을 반영한 결과라는 점을 고려하면, 2022년 인상분 19.3원은 탈원전 정책의 결과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물론, 앞으로 예상되는 올해 인상분은 세계적 에너지 가격 폭등에 따른 원가 상승에서 비롯된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에 한전공대 신설과 같은 한전의 경영 실패에 의한 인상 요인도 있다. 물론 한전으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한전 이사회의 결정 사항이었다는 차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원인을 따지지 않고 전기요금 인상으로 퉁 쳐서는 안 된다. 원인에 따라 해결 방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 실패의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한다. 정부의 책임은 곧 국민 전체의 책임이 된다. 국민과 전기 사용자를 구분해야 한다. 국민은 세금을 내고, 전기 사용자는 전기요금을 낸다. 국민의 책임을 전가해 사용자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또한 한전의 경영 실패 책임이 한전 주주들의 몫이라는 점은 설명이 필요 없는 책임 경영 원칙이다. 그리고 에너지 가격 인상에 따른 발전원가 상승분은 당연히 전기요금에 반영돼 전기 사용자가 감당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직 산업부 장관이 “탈원전으로 전기요금이 인상되지 않을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라고 혹세무민한 전직 장관이 사과해야 할 몫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다. 무차별한 전기요금 인상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탈원전 실패의 책임을 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