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서울시의 아파트 명칭 간섭

공동주택 명칭이 한국처럼 다채롭고 거창한 곳도 잘 없다. 영어·불어에 이탈리아말까지 조합한 긴 아파트 이름을 둘러싼 썰렁한 우스개도 그래서 나왔다. 가령 열 글자가 넘는 국적불명 이름은 시골 노부모의 서울 아들 집 방문을 막는 데 도움 된다고 지었다는 것이다. 도시 며느리의 ‘쾌재’도 잠시, 택시기사조차 집 찾기가 어렵자 촌로 시어머니가 길잡이로 시누이까지 달고 오더라는, 진화한 버전도 있다. 미국 대학의 장학금 지급에서 ‘OO팰리스’ ‘OO캐슬’ ‘브라운스톤’이 주소지인 한국 학생은 다 떨어지고, ‘파크’가 들어간 곳은 공원 옆 서민주택 취급을 받아 수혜를 봤다는 믿거나 말거나 얘기는 고전이다.

길어지는 아파트 이름을 두고 “과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보다 나은 주거지를 갈망하는 현대 한국인의 꿈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고가의 의류·패션·보석 명품을 두고 ‘허영의 시장’에서 최고봉이라는 평가와 명장의 혼이 깃든 예술품이라는 찬사가 교차하는 것과 비슷하다.주택도 ‘브랜드 경제학’에서 보면 고유의 개성 상표로 발전해가는 것은 자연스럽다. 브랜드 진화 차원에서 보면 대형 건설업체의 아파트 작명법에는 고급화 전략이 뚜렷하다. 동네나 지역, 진달래·개나리 같은 명칭에서 소득 수준에 맞춰 아파트 브랜드도 참으로 다양해졌다. 아크로·디에이치·시그니엘 같은 특급 프리미엄 상표까지 나왔다. 고유의 브랜드를 개발하고 고급 이미지를 위한 홍보비도 아끼지 않는다.

서울시가 복잡한(?) 아파트 작명에 개입·간섭할 모양이다. 권고냐, 가이드라인 마련이냐로 공청회도 열었다. 쉬운 명칭을 쓰자는 ‘선한 취지’는 모를 바 아니나, 늘 이렇게 시작하는 게 규제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에 악마가 숨어든다는 게 규제 경계론이다.

외국어 남용이 문제라면 국산 식·음료부터 자동차·휴대폰의 브랜드까지 다 시빗거리다. 길고 짧은 것은 절대적 기준도 없다. 인센티브제여도 문제는 남는다. 재건축·재개발에서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전권을 가진 게 지자체 행정인데, 어떤 주택조합 어느 건설사가 시 눈치를 안 볼 수 있겠나. 간섭하고 싶은 것 참고 자제하는 것도 좋은 행정이다. 모든 규제가 다 선의로 시작한다는 점도 경계할 일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