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인사이트] 트렌드가 버거운 당신에게

1만7898건. 국내 대형서점 사이트에서 ‘트렌드’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숫자다. 매년 이맘때면 트렌드 책이 서점가에 쏟아진다. ‘트렌드’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 미래학이나 전망서까지 더한다면 종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최근 트렌드 자체가 트렌드가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갈수록 빨라지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트렌드를 캐치할 수 있는 요령을 묻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트렌드를 좇아가기 버겁다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 트렌드는 꼭 알아야 하는 걸까. 트렌드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실 우리가 트렌드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트렌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정의부터 알아보자. 트렌드란 ‘일정 범위의 소비자가 일정 기간 동조하는 변화된 소비가치에 대한 열망’이다. 따라서 트렌드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지속하는 시간적 길이와 동조 소비자의 범위를 기준으로 나뉜다.

'반짝 유행'은 트렌드 아냐

트렌드의 종류를 간단하게만 살펴보면, 6개월 혹은 1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끈 다음에 급속하게 사라지는 것을 패드(fad)라고 부른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특정 색상이나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할 때, ‘유행’이라는 용어에 내포돼 있는 의미는 사실 패드에 가깝다. 패드와 지속 기간은 비슷하지만 소수 집단에서 확산되는 트렌드는 ‘마이크로 트렌드(micro trend)’라고 한다. 더 나아가 5~10년에 걸쳐 보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트렌드’라고 한다. 트렌드는 시장이 변화하는 방향을 가리키며, 그 변화의 이면에 사람들의 심리적 동기가 작용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트렌드보다 지속 기간이 훨씬 긴, 적어도 20~30년 이상의 오랜 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사회·문화적 변화는 ‘메가 트렌드(mega trend)’라고 하며, 그 외에 자연 생태계처럼 아주 긴 기간을 두고 변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를 ‘메타 트렌드(meta trend)’라고 칭한다.

트렌드 종류에 따라 현상을 캐치하는 방법론도 달라진다. 반짝 유행에 그치는 패드와 소수의 집단에 나타나는 마이크로 트렌드는 사례 조사, 트렌드 다이어리, 이머징 이슈 분석과 같은 방법론을 통해 향후 트렌드로 확산될 만한 옥석을 가리고 파급효과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5~10년 주기를 갖는 트렌드는 소비자 FGD, 델파이 조사 등 정성 분석을 통해 발전 전망과 변곡점을 파악한다. 보다 넓은 집단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는 메가 트렌드 이상의 영역에서는 설문조사, 빅데이터와 같은 정량적 분석이 유용하다.

'왜 그 현상이 나타날까' 생각을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점은 현재 일어나는 현상이 반짝 유행에 그치는 것인지, 중장기 트렌드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가능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트렌드의 원인을 이해해야 하는데, 현상의 이면에 있는 심리적 동기, 사회·경제적 배경, 기술적 진보, 해당 세대의 성장 배경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다시 말해 현재 유행하는 표면적인 현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트렌드코리아 2023>은 공저자 자격으로 집필한 10번째 책이다. 짧지 않았던 시간 동안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으라면, 나이가 지긋하신 독자분께서 “이제야 우리 아들이 혹은 우리 딸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됐어요”라는 말을 해주실 때다. 결국 트렌드를 연구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자 다른 세대,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창이라고 생각해보자. 트렌드에 대한 당신의 시선이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트렌드 인사이트> 칼럼이 독자 여러분께서 다른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소통창구가 되기를 바란다.

최지혜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