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뫼의 눈물' 5년…군산조선소가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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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현장점검 - 조선지난달 30일 전북 군산의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서는 컨테이너선 건조에 필요한 ‘블록’(TBHD·격벽)을 도장 공장으로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군산조선소가 지난해 10월 부분 재가동에 들어간 이후 제작한 첫 블록이다. 가로 40m, 세로 20m, 높이 1.5m에 무게는 150t 정도다. 이런 블록 200개가 모여 1만5000TEU급(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 컨테이너선 한 척이 건조된다.
현대중공업 선박수주 늘자
작년 10월부터 부분 재가동
흩어졌던 직원들 속속 귀환
컨테이너선용 블록 첫 출하
현장 근로자들은 첫 블록이 나오는 조립공장 앞에 줄지어 서 출하를 자축했다. 지난 2개월여간 블록을 제작한 류해수 기원은 “군산조선소에서 5년5개월 만에 블록이 다시 나오는 것을 보니 감정이 벅차오른다”며 울먹였다. 그는 군산조선소 폐쇄로 울산으로 갔다가 조선소를 재가동한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복귀했다.2008년 가동을 시작한 군산조선소는 조선 경기 악화로 수주가 급감하면서 2017년 7월 문을 닫았다. 최대 4000여 명에 달하던 근로자는 일자리를 찾아 울산 평택 청주 등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전북 제조업의 12%, 군산 경제의 24%를 담당하던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자 지역 경기도 얼어붙었다. 이듬해인 2018년 한국GM 군산공장까지 폐쇄되면서 2016년 28만 명에 육박했던 군산 인구는 지난해 26만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동안 군산은 한국판 ‘말뫼의 눈물’로 불렸다.
5년여간 눈물을 흘리던 군산에 최근 생기가 돌고 있다. 지난해 10월 군산조선소가 부분 재가동에 들어간 덕분이다. 전국으로 흩어졌던 직원들도 군산으로 속속 복귀하고 있다. 반도체 건설 현장에서 일한 일부 직원은 월급이 줄어드는 것도 감수하고 고향 군산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대부분 블록 생산을 위한 용접과 사상(그라인더) 작업을 하고 있다. 군산조선소는 450여 명인 근무 인원을 100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종천 군산조선소 책임매니저는 “군산조선소 완전 정상화는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조선 르네상스' 생기 도는 군산…"3년 일감 있다니 도크 곧 차겠죠"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5년3개월 만에 부분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선박 수주가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을 자회사로 둔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에만 197척을 수주했다. 금액으로는 239억5000만달러어치로, 연간 수주 목표(174억4000만달러)를 37% 초과 달성했다.군산 지역경제도 ‘훈풍’
부분 가동 중인 군산조선소는 이달 완전 재가동에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블록 가공 △소조 △대조 △채널 △도장 등 5개 공장에 1000여 명의 직원이 상시 근무하게 된다. 올해 군산조선소의 예상 매출은 1800억원으로, 연간 10만t의 블록을 생산할 예정이다. 2016년(1조6000억원)에 비하면 아직 미미하지만, 군산조선소는 이제 시작이라는 분위기다.군산조선소가 재가동되면서 지역경제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군산조선소는 12곳의 지역 협력사를 지정했고, 신산테크 우신엔지니어링 등 인근 사외 협력사들도 다시 문을 열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지금은 군산조선소에서 블록만 만들지만 다시 도크에서 배를 지을 수 있도록 현대중공업 의견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조선 3사, 1조2000억원 영업이익
국내 조선 3사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 잔액은 한국조선해양 414억달러, 대우조선해양 315억달러, 삼성중공업 302억달러 등 1031억달러(약 131조원)에 달한다. 조선 경기가 최고점에 이르렀던 2000년대 중반 수준은 아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올해 불확실한 경기 탓에 신규 수주는 줄어들지만 잔량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은행이 발간한 ‘2023년 산업전망’에 따르면 올해 수주 잔량은 3880만CGT(표준환산톤수)로, 전년 대비 6.9%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2011년(3870만CGT) 후 12년 만에 3800만CGT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올해 실적에서도 국내 조선사들은 오랜 적자 행진을 끝내고 흑자 전환이 확실시된다. 조선 3사는 현대제철과 작년 하반기 후판 가격을 t당 10만원가량 내리는 데도 합의했다. 이런 기조는 올해도 이어져 2021년 t당 130만원에 달하던 후판 가격은 100만원 안팎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후판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안팎이다.시장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의 올해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9127억원이다. 삼성중공업은 1155억원, 대우조선해양은 2298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전망이다. 국내 조선 3사가 동시에 흑자를 내는 건 2011년 이후 12년 만이다.
당분간 조선업 ‘빅사이클’
조선업은 올해뿐 아니라 2~3년간 호조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내 조선사들은 지난해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 물량의 70%가량을 싹쓸이했다. LNG 운반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힌다. 게다가 이미 3년치 이상 일감을 확보했다. 국내 조선사들은 올해도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의 수주에 나설 방침이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전쟁 여파로 원유 운반선 발주가 증가하고, LNG 운반선 수요 확대로 당분간 조선업 빅사이클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준 한국신용평가 선임애널리스트는 “국내 조선사들이 2021년 3분기까지 수주한 물량은 대부분 적자로 추정되지만,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이익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군산=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