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빌라 샀는지 기억 못해"…檢, 283채 깡통전세 사기 일당 기소

사진=연합뉴스
무자본 갭투자 수법으로 임차인들이 낸 보증금 30억원가량을 가로챈 일당이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전세 사기 전담수사팀(팀장 부장검사 이응철)은 4일 서울 화곡동 일대에서 2년여간 283채의 빌라를 매입해 전세로 내놓아 31억 6800만원 상당의 임대차보증금을 챙긴 혐의로 임대사업자 강모 씨(55)를 구속기소했다. 공인중개사 A씨와 그의 동업자 B씨 등 2명도 불구속기소 했다.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2015년 10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2년 2개월간 서울 화곡동의 빌라 283채를 사들였다. 이들은 자기자본 없이 다른 임차인들이 낸 임대차보증금으로 다른 빌라를 계속해서 매수했다. 피고인들은 건축주로부터 빌라를 사들일 때 빌라 한 채당 500만~1500만원을 리베이트로 돌려받아 서로 나누어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음에도 빌라를 사들이고 보증금 돌려막기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피고인들은 피해자들이 보증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줄 돈이 없으니 차라리 빌라를 직접 사라”며 배짱을 부리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이 무슨 빌라를 사들였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금까지 확인된 피해자 18명이 돌려받지 못한 임대차보증금 규모가 31억8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중에는 결국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경매로 넘어간 빌라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사들인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아직 자신이 피해자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해당 빌라에 거주하는 경우도 많아 피해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막는 과정서 자신이 잠재적 피해자인지도 모르고 무사히 전세금을 돌려받아 집을 빠져나온 세입자도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지난 2020년 8월 서울 강서경찰서로부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경찰의 수사 기록을 살펴보고 보완 수사를 거쳐 이들을 기소했다. 당초 경찰은 이번 전세 사기에 연루된 빌라 규모를 150여채가량만 파악하고 검찰에 넘겼다. 이들이 매수한 빌라의 전체 규모와 자금흐름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검찰은 혐의를 정확히 입증하기 위해 보완 수사를 했다. 이 부장검사는 “허위의 임대인과 임차인을 내세우는 일반적인 전세 사기와는 달리 사건 난도가 높아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이번 사기 피해자 대부분은 20~30대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전세 사기 전담수사팀을 중심으로 전세 사기 범죄를 집중적으로 수사해 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