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집고, 쏘고, 만진다…막대 대신 장갑 입은 VR [CES 2023]

'다이버-X'의 '컨택트 글러브'
장갑형 VR 컨트롤러 체험해보니

강아지 쓰다듬고, 활 쏜다
버튼 누름 없이 손 움직임 인식
'다이버-X'의 야마토 사코다 CEO가 직접 컨택트 글러브를 사용해 게임 속에서 활을 쏘고 있다. 장갑 형태의 컨트롤러가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지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손을 쥐었다 펴면서 화살을 날려보낼 수 있다. /최예린 기자
2018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현실보다 더 실감나는 미래 메타버스 세계를 묘사한다. 가상현실(VR) 게임 ‘오아시스’ 속의 캐릭터가 느끼는 다양한 촉각은 물론 통증까지도 VR 수트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전달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 수준까진 멀었더라도, 최근 웨어러블 하드웨어는 VR의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점차 정교해지고 있다. CES 2023에서도 신발, 조끼, 장갑 등 가상 현실 속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제품이 등장했다.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CES 언베일드(Unveiled) 행사장에서 일본 스타트업 ‘다이버-X’가 선보인 장갑형 VR 컨트롤러 ‘컨택트 글러브’를 기자가 사용해봤다.
장갑형 VR 컨트롤러인 '컨택트 글러브'로 게임 속 화살을 쏘는 모습. 활 시위를 당길 때 오므렸던 손을 펼치면, 손가락의 움직임을 인식해 화살이 날아간다. 최예린 기자

열 손가락 움직임 인지하는 장갑

양손에 낀 장갑은 얇고 가벼웠다. 손가락에 압력을 줘서 가상현실 속의 촉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마이크로 코일이 내장돼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 장갑보다는 두께가 느껴졌다. 하지만 자유롭게 손가락을 움직이고, 무게 부담 없이 팔을 휘두르기 충분할 정도로 편안했다. 다이버-X의 야마토 사코다 CEO는 “촉각 모듈에 형상기억합금을 사용해 기기의 크기를 최소화했다”며 “부피가 큰 컨트롤러나 무거운 장갑을 끼는 어색함 없이도 몰입도 높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장갑이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체크한다. 다섯 손가락을 차례로 접었다 펴는 움직임은 물론, 엄지와 중지, 약지를 접는 ‘락큰롤 사인’, 검지와 중지만 펴는 ‘브이 사인’ 같은 세심한 모양까지 인지된다.
기자가 '컨택트 글러브'를 끼고 손가락 움직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최예린 기자
이제 물건을 직접 집어볼 차례. 자연스러운 현실 속 움직임이면 충분했다. 헤드셋을 통해 보이는 가상현실 화면 속의 펜에 다가가 손을 펼치고, 손을 오므리니 펜을 집어들 수 있었다. 기존의 막대 형태 VR 컨트롤러처럼 버튼을 누르며 몰입감을 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펜을 만지는 순간, 실제 물건을 집을 때와 유사하게 손가락에 압박이 느껴졌다. 손가락을 감싸는 통 형태로 가공된 형상기억합금이 손가락을 눌러 ‘촉각 피드백’을 제공한 것이다. ‘컨택트 글러브’가 시중에 출시된 기존의 장갑 형태 컨트롤러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다. 다른 장갑 컨트롤러들은 압력이 아닌, 진동으로 촉각 피드백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상현실 속 물체와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은 있지만, 실제 현실에선 물건을 집는다고 진동이 발생하진 않기 때문에 여기서 몰입감이 깨질 수 있다. ‘컨택트 글러브’는 이 점을 보완해 몰입감을 더 높였다.
형상기억합금으로 손가락에 압력을 가해 가상현실 속 촉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다이버-X 제공.
물론 지금 기술 수준으론 장갑 컨트롤러가 실제 감각에 근접한 촉감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손바닥에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기껏해야 손가락 끝에 압력이 들어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촉각의 종류도 아직은 전혀 구현할 수 없다. 그래서 딱딱한 소재의 펜이 아니라, 복슬복슬한 강아지의 털을 만질 때는 괴리감이 심해졌다. 강아지를 쓰다듬는 손의 모양은 현실과 유사하지만, 장갑을 통해 손에 느껴지는 촉감이나 압력이 실제 강아지 털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막대 버리고 몰입감 ↑

특정한 손 모양이 아주 중요한 움직임을 실행할 때, 장갑 컨트롤러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됐다. 우리가 실제 세계에서 행하는 많은 행위는 대체로 특정한 손 모양을 요구한다. 컵을 손에 들고 물을 마실 때,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 총을 쏠 때 모두 손 모양이 다르다. 막대 컨트롤러로는 이 특정한 손 모양을 구현할 수 없다. 시각적으로 아무리 그럴듯한 가상현실을 만들어도, 손으로 무언가를 하려할 때 막대 컨트롤러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면 몰입감이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활을 쏘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이미 게임 시장에는 활을 쏘는 VR 게임들이 다수 출시돼있다. ‘인데스(In Death)’가 대표적이다. 주로 막대 형태의 컨트롤러를 들고 플레이하는데, 막대 컨트롤러는 손의 위치는 인식하지만 손가락의 움직임은 인지하지 못한다. 활 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팔을 당기면 게임 속 활 시위도 당겨지지만, 활을 날려보내려면 버튼을 눌러야 한다. 컨택트 글러브를 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버튼을 누르는 대신, 화살을 잡느라 오므렸던 손을 펴면 화살이 날아갔다.

칠판에 펜으로 글씨를 쓰는 행위도 자연스러웠다. 손 모양은 펜을 쥔 형태로 유지되고, 손목과 팔의 각도도 실제 글씨를 쓸 때처럼 만들어졌다. 막대 컨트롤러를 쓸 때처럼 ‘허공에 손을 휘젓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다.
야마토 사코다 CEO는 “현재도 스팀의 VR 게임과는 모두 연동되고, 앞으로는 스팀 이외의 플랫폼에서 출시되는 게임에도 연동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했다.

최예린 기자 rambut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