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툭튀' 자전거 피하고 수신호에도 척척…진화하는 자율車 [CES 2023]

한경 CES 2023 특별취재

발레오, 사람 움직임 예측하는 알고리즘 시연
교통경찰 수신호도 이해 "도시 자율주행 가능"

루미나, 3D 맵핑 스타트업 인수 발표
"구글보다 1000배 많은 루미나 탑재車로
세계 첫 고해상·실시간 3D 지도 만들 것"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 개막을 이틀 앞둔 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LVCC) 웨스트홀 인근에 마련된 글로벌 자동차 부품기업인 발레오의 자율주행 체험존에서 관계자들이 막바지 점검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들은 대부분 '레벨2' 단계의 반(半)자율주행차다. 운전은 사람이 직접 하면서 커브에서 방향을 조정하거나 앞차와의 간격 유지, 차선 중앙 유지 등이 필요할 때 차량이 도와주는 '주행 보조' 수준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고속도로 같은 특정 조건 아래서만 자율주행을 하고 긴급할 땐 사람이 개입해야 하는 레벨3가 된다.

기업들의 우선 목표는 레벨3 자율주행을 상용화하면서 레벨4까지 안정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레벨4는 일반 도로에서도 사람이 개입할 필요 없이 차량이 상황을 인지·판단하며 스스로 운전하는 단계다. 완전 자율주행 수준이다. 레벨4 상용화가 어려운 건 자동차가 주행할 때 벌어지는 수많은 돌발 상황에 차량이 자율적으로 대처하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고속도로가 아닌 혼잡한 도시 도로에선 완전 자율주행차가 달리기 쉽지 않다.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3'에선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모빌리티 기업들의 신기술이 대거 등장했다. 프랑스 전장 업체 발레오는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다양한 도로 이용자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알고리즘 '판토마임'을 공개했다. 발레오는 벤츠 스텔란티스 제네시스 등의 자율주행차에 라이다(LiDAR) 센서를 공급하고 있는 기업이다.

발레오 "도로 이용자의 '의도'까지 계산"

판토마임은 자전거 운전자나 도로 주변의 공사 인부, 보행자 등 다양한 도로 이용자의 움직임과 궤적을 추정하는 알고리즘 소프트웨어다.크리스토프 페리엣 발레오 CEO는 "자율주행차가 복잡한 도시 환경을 주행할 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사람의 존재를 감지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움직임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라며 "차도 근처의 사람이 차량을 보거나 다리를 차도 쪽으로 움직이면 충돌 위험이 있다고 예측하고 멈출 수 있어야 한다. 판토마임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했다.
판토마임이 탑재된 차는 경찰관의 수신호를 이해하고 그에 따르는 것도 가능하다. 신호등이 고장나 경찰관이 교통 정리를 하고 있을 때에도 운전자가 개입할 필요 없이 차량이 완전 자율주행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페리엣 CEO는 "도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에게 꼭 필요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라이다, 3~5년 안에 카메라보다 주류 될 것"

발레오는 자율주행 센서 분야에서 앞으로 3~5년 안에 라이다가 카메라와 레이더를 넘고 주류 기술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내놨다. '자율주행차의 눈'으로 불리는 라이다와 레이더는 각각 레이저, 전파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인지하는 센서다. 그간 테슬라가 고수해온 카메라는 이 두 가지에 비해 주변 정보 인식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다. 페리엣 CEO는 "레벨3가 상용화되면 결국 라이다 기술이 지금보다 훨씬 주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스텔란티스가 2024년까지 산하 여러 브랜드의 자율자동차에 발레오 라이다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루미나, '시빌 맵스' 인수

미국의 라이다·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루미나테크놀로지는 '3D 맵핑' 기술을 확보했다.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필수 요건으로 꼽히는 정밀 3D 지도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다.

루미나의 창업자 겸 CEO인 오스틴 러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작년 2분기 실리콘밸리의 3D 맵핑 스타트업인 '시빌 맵스'를 인수한 사실을 공개했다. 시빌 맵스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센서가 수집한 데이터를 3D 지도 정보로 변환하는 기술을 처음 개발한 곳이다. 자율주행 시대가 열리며 각광받았다. 루미나에 따르면 세계 3D 지도 시장 규모는 2021년 14억달러에서 2030년 169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루미나의 창업자 겸 CEO인 오스틴 러셀이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호텔에서 'CES 2023' 미디어데이 기자간담회에서 루미나 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러셀 CEO는 시빌 맵스 인수 후 루미나가 개발한 고해상(HD) 3D 지도 제작 기술 소프트웨어를 이날 공개했다. "전 세계의 정밀한, 실시간 3D 지도를 최초로 만들겠다"는 비전도 밝혔다. 루미나는 "고해상 3D 지도는 차세대 자율주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며 "주변 환경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해 차량 안전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러셀 CEO는 고해상 3D 지도 제작을 위해 2025년까지 루미나 라이다가 탑재된 차량 100만대를 전 세계 도로에 내보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현재 지도 서비스 선두 업체인 구글이 운용하는 데이터 수집 차량이 1000대 규모다. 루미나는 그보다 1000배 많은 차량을 굴리겠다는 것이다. 애플이 운용하는 차량은 약 250대, 히어·톰톰은 각 75대 정도다.

5시간 만에 라스베이거스 도로가 3D 지도로

구글 애플 등 기존의 지도들은 거대한 카메라를 지붕에 단 자동차를 사람이 운전하면서 자료를 수집하면 이를 토대로 지도가 주기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방식이다. 반면 루미나 라이다는 자동차에 내장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라이다의 인식 범위가 넓고 차량 수도 많다 보니 '실시간' 수준의 정보 수집도 가능하다. 러셀 CEO는 "전 세계를 정밀한 3D로 구현하려면 수백만 대의 차량이 필요하다"며 1차 목표로 100만대를 제시했다.
루미나는 이날 실제 라이더 탑재 차량 두 대가 라스베이거스를 돌아다니며 수집한 데이터로 3D 지도가 만들어지는 모습도 공개했다. 데이터 수집 시간은 오전 9시부터 기자간담회가 진행된 오후 2시까지 5시간.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도시 상당 부분이 3D 지도로 구현됐다.

새 로고도 공개 "소비자에게 직접 가닿겠다"

루미나의 시빌 맵스 인수와 3D 맵핑 기술 확보는 라이다를 넘어 차세대 자율주행차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에 따른 것이다. 수많은 부품 업체 중 하나가 아닌 브랜드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포부도 반영됐다.

러셀 CEO는 이날 루미나의 새 로고를 공개하며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 가 닿는 첫 자동차 기술 기업이 되겠다"는 브랜드 비전을 밝혔다. 그는 "이제는 (자동차 브랜드보다) 차가 어떤 기술을 쓰는지, 어떤 운전 경험을 만들어주는지가 중요한 시대"라며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소비자들도 '루미나'를 자기 자동차에 넣고 싶어하는 수요가 늘고 있다. 루미나만의 브랜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라스베이거스=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