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뺑소니차에 끌려가 사망한 印 여성…'소녀가장'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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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발견 20대 소녀가장 ‘성폭행’ 의혹…음주차에 끌려가다 사망새해 첫날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뺑소니 차에 몸이 끼여 13㎞나 끌려다닌 끝에 사망한 스무살 여성이 혼자 벌어 식구들을 먹여 살린 소녀 가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5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희생자는 이벤트 매니저로 일하는 안잘리 싱이다. 싱은 지난 1일 새벽 1시 45분쯤 호텔을 나서 스쿠터에 올라 귀갓길에 나섰다. 2시쯤 소형차에 치여 스쿠터가 넘어졌는데 그의 다리가 가해 차량 아래에 끼이는 바람에 한 시간가량을 끌려다닌 것으로 알려졌다.가해 차량에는 술을 마셔 잔뜩 취한 남성 다섯이 타고 있었다. 충돌 사고가 발생한 후 그대로 차를 몰아 자리를 떴다. 이들은 13㎞를 달린 뒤에야 싱이 차량에 매달려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 남자들은 시신을 수습하지도 않고 그냥 자리를 떠났다.
사고 차량이 싱을 매달고 달리는 것을 목격한 시민들이 신고했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싱이 타고 있었던 오토바이와 관련한 조사만 벌였고, 시신이 발견된 뒤에야 뒤늦게 남성 용의자 다섯을 체포했다. 용의자 중에는 집권당인 인도 국민당(BJP)의 지역 지도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밝은 표정의 사진을 올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삶과 달리 그의 생활은 완전히 달랐다고 방송은 전했다. 그는 정부가 지원하는 공짜 음식에 의지해 연명하는 가정에서 돈을 버는 유일한 존재였다. 이웃 여인들의 화장을 해주거나 짬짬이 결혼식이나 행사 등에 나가 벌어오는 푼돈이 고작이었다. 어머니 레카에 따르면 힘겹게 생활하면서도 늘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싱은 뉴델리 북서쪽 망골푸리(술탄푸리) 지역에 사는 달리트 출신으로 인도 카스트 제도 중 불가촉천민 등급이었다. 부엌 하나인 작은 집에서 여덟 식구가 부대껴 살았다. 여섯 자녀 중 둘째인데 10대 때부터 집안을 책임진다며 학교를 그만뒀고 아버지는 8년 전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레카는 학교 사환으로 일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고 만성 신부전을 앓아 다시는 일할 수 없게 됐다. 어머니는 “싱은 가족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착한 딸이었다”고 말했다.
5년 전 싱은 대출받아 스쿠터를 장만했는데 이제 대출금을 거의 갚은 시점에 그 스쿠터로 비운을 맞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도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경찰과 연방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시위도 벌어졌다는 소식이다. 누리꾼 비베크 샤르마는 트위터를 통해 “수도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이 창피하다”고 말했다. 아르빈드 케지리왈 델리 주 총리도 전날 “몇㎞나 여성이 차에 끌려간 끝에 사망했는데 어떻게 경찰이 이를 알아채지 못할 수 있느냐”고 개탄했다.한편 싱의 친척들은 그녀가 살해되기 전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싱의 시신이 알몸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싱의 시신이 발견된 술탄푸리 경찰서 앞에는 많은 시민이 몰려 와 철저한 조사와 정의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지민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