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넘긴우크라전 가다] 허공에 뜬 불빛들, 어둠과 적막에 갇힌 키이우의 밤
입력
수정
새해 야간버스에 15시간 몸싣고 이동…무표정한 승객들, 남성은 한명 뿐
동트자 개전초 러 진격했던 외곽 폐허 모습 드러내…시내 중심가도 이른 오후부터 암흑 러시아의 침공 이후 항공편이 끊어진 우크라이나에 입국하기 위해선 폴란드를 거쳐 육로를 통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새해 초인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5시20분께 폴란드 바르샤바를 출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향한 버스는 플랫폼에 서자마자 승객으로 가득 찼다.
아무도 가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던 키이우행 45인승 버스가 만석이 된 것에 놀란 것도 잠시였을 뿐, 전쟁 중인 국가로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숨을 돌린 뒤 둘러본 승객들의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새해의 들뜸이나 여행의 설렘은 아예 찾을 수 없었고,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대화도 드물었다. 15시간에 걸친 초장거리 야간 여행을 앞둔 부담 탓도 있었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삶의 무게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짐작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버스가 휴식 차 정차했을 때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승객 중 성인 남성은 교대 운전자 2명과 연합뉴스 취재진 2명을 제외하면 단 1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여성 또는 어린이였다.
전쟁으로 인해 성인 남성의 출국은 일부 예외적 사유를 제외하면 사실상 막혔다는 게 이튿날 아침에 만난 키이우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미 해외로 나간 남성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귀국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바르샤바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경광등을 켠 차량의 호위를 앞뒤로 받으며 우크라이나 국경 방향으로 향하는 2대의 트럭에 각각 실린 기갑차량 2대가 눈에 띄었다.
한밤 비좁은 버스 차창을 통해 정확한 차량 종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으나 거대한 포신의 위압감만은 또렷했다.
국경 통제소를 지나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서자 그렇지 않아도 어둡던 밤길은 완전한 암흑으로 변했다.
달리고 달려도 가로등은커녕 어떤 건물도, 다른 차량도 없이 오직 버스의 헤드라이트만이 유일한 불빛인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됐다.
게다가 도로 곳곳이 울퉁불퉁하게 손상됐거나 비포장 상태로 남아있는 등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큰 국토를 가졌지만 한편으론 가장 낙후된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1천㎞에 육박하는 여로가 막바지를 향하던 이튿날인 4일 동이 틀 무렵, 암흑이 걷히자 드러난 것은 키이우 외곽의 폐허였다.
지난해 3월 러시아군이 키이우 코앞까지 진격했을 때 부서지고 불에 탄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대형 창고와 공장 건물은 물론 일반 주택과 상가까지 멀쩡한 건물은 반이나 될까, 마을마다 몇 개씩 부서진 건물이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큰 건물일수록 표적이 되기 쉬웠는지 거의 예외 없이 부서져 있었다. 겨울철 키이우에서 잠깐 물러났던 어둠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쯤 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오후 4시께에는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찾아왔다.
일과 시간 거리에 적잖이 보였던 행인들도 이때쯤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키이우 시내 식당을 방문한 때가 7시 30분 전후였는데, 국가 수도의 중심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는 어둡고 한산했다.
가로등도 어쩌다 한두 개 켜져 있을 뿐이었고, 대부분 상가가 문을 닫은 가운데 불이 켜진 건물도 찾기 힘들어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때가 9시께로, 야간 통행금지까지는 2시간 남짓 남았지만 이미 거리에는 인적이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그나마 관공서와 외국 대사관이 밀집된 중심지라 평소 오가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고 전력 상황도 비교적 괜찮은 편인데도 그 정도였다.
주키이우 한국대사관 직원들도 숙소에선 전기가 수시로 끊어져 촛불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발전기를 구입하려고 해도 배송이 언제나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금이 시작된 후 호텔 창 밖으로 바라본 키이우 시내는 적막과 암흑에 갇혀 있었다.
불빛이 있었지만 워낙 띄엄띄엄해서 건물이나 거리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다니는 순찰차를 제외하면 거리에 차량도 없었다. 호텔 창문을 열어도 아무 소리가 없는 기이한 적막만이 키이우의 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연합뉴스
동트자 개전초 러 진격했던 외곽 폐허 모습 드러내…시내 중심가도 이른 오후부터 암흑 러시아의 침공 이후 항공편이 끊어진 우크라이나에 입국하기 위해선 폴란드를 거쳐 육로를 통하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새해 초인 지난 3일(현지시간) 오후 5시20분께 폴란드 바르샤바를 출발,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로 향한 버스는 플랫폼에 서자마자 승객으로 가득 찼다.
아무도 가지 않을 것처럼 생각했던 키이우행 45인승 버스가 만석이 된 것에 놀란 것도 잠시였을 뿐, 전쟁 중인 국가로의 여행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렵게 자리를 잡고 숨을 돌린 뒤 둘러본 승객들의 표정은 대부분 무표정하게 굳어 있었다. 새해의 들뜸이나 여행의 설렘은 아예 찾을 수 없었고, 승객으로 가득 찬 버스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대화도 드물었다. 15시간에 걸친 초장거리 야간 여행을 앞둔 부담 탓도 있었겠지만, 전쟁으로 인한 삶의 무게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짐작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버스가 휴식 차 정차했을 때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승객 중 성인 남성은 교대 운전자 2명과 연합뉴스 취재진 2명을 제외하면 단 1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여성 또는 어린이였다.
전쟁으로 인해 성인 남성의 출국은 일부 예외적 사유를 제외하면 사실상 막혔다는 게 이튿날 아침에 만난 키이우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그는 이미 해외로 나간 남성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귀국하는 경우도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했다.
바르샤바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경광등을 켠 차량의 호위를 앞뒤로 받으며 우크라이나 국경 방향으로 향하는 2대의 트럭에 각각 실린 기갑차량 2대가 눈에 띄었다.
한밤 비좁은 버스 차창을 통해 정확한 차량 종류를 확인하기는 어려웠으나 거대한 포신의 위압감만은 또렷했다.
국경 통제소를 지나 우크라이나 영토에 들어서자 그렇지 않아도 어둡던 밤길은 완전한 암흑으로 변했다.
달리고 달려도 가로등은커녕 어떤 건물도, 다른 차량도 없이 오직 버스의 헤드라이트만이 유일한 불빛인 시간이 오래도록 계속됐다.
게다가 도로 곳곳이 울퉁불퉁하게 손상됐거나 비포장 상태로 남아있는 등 유럽에서 러시아에 이어 2번째로 큰 국토를 가졌지만 한편으론 가장 낙후된 국가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1천㎞에 육박하는 여로가 막바지를 향하던 이튿날인 4일 동이 틀 무렵, 암흑이 걷히자 드러난 것은 키이우 외곽의 폐허였다.
지난해 3월 러시아군이 키이우 코앞까지 진격했을 때 부서지고 불에 탄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대형 창고와 공장 건물은 물론 일반 주택과 상가까지 멀쩡한 건물은 반이나 될까, 마을마다 몇 개씩 부서진 건물이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을씨년스러운 모습을 드러냈다.
큰 건물일수록 표적이 되기 쉬웠는지 거의 예외 없이 부서져 있었다. 겨울철 키이우에서 잠깐 물러났던 어둠이 다시 돌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후 3시 30분쯤 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고, 오후 4시께에는 해가 완전히 지고 밤이 찾아왔다.
일과 시간 거리에 적잖이 보였던 행인들도 이때쯤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키이우 시내 식당을 방문한 때가 7시 30분 전후였는데, 국가 수도의 중심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거리는 어둡고 한산했다.
가로등도 어쩌다 한두 개 켜져 있을 뿐이었고, 대부분 상가가 문을 닫은 가운데 불이 켜진 건물도 찾기 힘들어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때가 9시께로, 야간 통행금지까지는 2시간 남짓 남았지만 이미 거리에는 인적이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그나마 관공서와 외국 대사관이 밀집된 중심지라 평소 오가는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고 전력 상황도 비교적 괜찮은 편인데도 그 정도였다.
주키이우 한국대사관 직원들도 숙소에선 전기가 수시로 끊어져 촛불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고 발전기를 구입하려고 해도 배송이 언제나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통금이 시작된 후 호텔 창 밖으로 바라본 키이우 시내는 적막과 암흑에 갇혀 있었다.
불빛이 있었지만 워낙 띄엄띄엄해서 건물이나 거리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이따금 다니는 순찰차를 제외하면 거리에 차량도 없었다. 호텔 창문을 열어도 아무 소리가 없는 기이한 적막만이 키이우의 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