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휩쓴 헬스케어, 韓선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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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KAIST 특별취재‘일상 속의 의료.’
원격의료 막아 사업화 불가능
5~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 디지털 헬스케어 전시관을 꿰뚫은 키워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개인 건강 관리에 관심이 높아지고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면서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집 안의 주치의’ 서비스가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 됐다.이번 CES에서 싱가포르 스타트업 애바이스헬스는 폐 소리를 분석해 천식 등의 질환을 추적하는 원격 청진기 ‘애바이스MD’를 선보였다. 동전 모양의 애바이스MD를 가슴 윗부분에 붙이고 기다리면 심박수, 호흡기 상태, 기도협착 여부 등이 수치로 표시된다. 쌕쌕거림 등 증상이 악화하면 사용자에게 경고 알람을 보낸다. 의사는 앱에 자동으로 기록된 폐 소리 데이터를 보고 전화 통화로 환자에게 치료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런 ‘혁신’ 의료기기는 한국에서 제 실력을 100% 발휘하기 어렵다. 원격 모니터링은 허용하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원격으로 진료하고 처방하는 원격의료는 원칙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원격의료를 제도화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현재 허용한 비대면 진료는 팬데믹 상황에서 한시적으로 풀었을 뿐이다.
CES 현장에서 만난 한 국내 의료기기 업체 최고경영자는 “해외 기업도 원격의료가 불가능한 한국 시장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며 “스마트 헬스케어 시장에서 한국은 이미 갈라파고스로 전락했다”고 토로했다.
'일상 속 의료' 제자리 韓 헬스케어 찬밥신세
아무리 애바이스MD와 같은 똑똑한 기기가 이상징후를 포착했다 하더라도 환자가 직접 병원에 가서 의사 얼굴을 보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는 처방을 받을 수 없다. 국내 의료기기업체들도 답답해하기는 마찬가지다. 원격의료 플랫폼을 결합할 수 있는 기기를 개발해도 상용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기업들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세계는 ‘일상 속 의료’가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원격의료와 의약품 배송은 여전히 불법이다. 의사 약사 등 이익집단의 반발에 막혀서다. 정부는 오는 6월을 기점으로 의료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낙관하긴 이르다는 지적이다. 18~20대 국회에서도 의료법 개정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국내 헬스케어 기업의 혁신은 해외에서도 평가받고 있다. 원격의료 앱 닥터나우는 ‘CES 2023’에서 혁신상을 받았다.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아도 각종 규제에 발목이 잡혀 국내에서 레퍼런스(사용이력)를 쌓지 못하다보니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신 곳이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CES 특별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