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이란·파키스탄 등도 분쟁 위험…세계 국방비 증액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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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 서방 대리전 양상된 우크라전1990년대에 냉전이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세계는 ‘큰 전쟁(big war)’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잊고 살았다. 2000년대 들어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은 국지전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달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면서 국지전을 넘어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 사실상 세계대전처럼 ‘슈퍼파워’들의 충돌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푸틴의 장기전'으로 수년간 이어질 수도
美, 국방비 8% 늘려…日은 두배 계획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충격 다시 일깨워
우크라 아닌 서방과 싸우는 푸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음달 24일로 발발 1년을 맞는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극적으로 평화협상을 타결할 것이란 기대는 희미해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전쟁이 올해를 넘겨 수년 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현재 상태로 전쟁을 끝내자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 생명이 위태롭다. 그렇다고 서방이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승리를 끌어낼 만큼 강력한 무기를 전폭 지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우크라이나가 원하는 크림반도 수복이나 러시아 본토 공격은 푸틴 대통령의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어서며 핵전쟁 가능성을 키울 수 있어서다. 날씨가 풀리는 봄에 양측 전투가 더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세계 외교가와 외신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푸틴의 장기전(long war)’이라 부르고 있다.
우크라이나만큼 위태로운 지역은 대만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0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개막식에서 대만을 향한 무력 사용 포기를 결코 약속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물론 중국이 당장 대만을 침공해 무력 통일을 시도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드물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돌발 변수로 시 주석이 무력 사용을 결정할 경우 대만해협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미국 외교 전문매체 포린폴리시(FP)는 이 외에도 이란, 파키스탄, 예멘,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을 주요 분쟁 지역으로 꼽았다.
세계는 국방비 늘리기 경쟁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지난해 말 인터뷰에서 “냉전은 끝난 게 아니었으며, 군사력을 증강했어야 했다”며 공개적으로 반성문을 썼다. 더 이상 전쟁을 남의 일로 여기지 못하게 된 세계 각국은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다.미국의 2023회계연도(지난해 10월~올해 9월) 국방예산은 8580억달러(약 1090조원)로 전년보다 8% 늘었다. 일본은 2023회계연도(올 4월~2024년 3월) 방위비를 전년보다 26% 증액한 6조8000억엔(약 65조원)으로 편성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은 국내총생산(GDP)에서 방위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2027회계연도엔 현재의 두 배인 2%로 늘리기로 했다.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제시한 국방비 목표치(GDP의 2%)를 달성하지 않았던 회원국들도 증액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한국은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보다 4.4% 늘린 57조143억원으로 잡았다.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강력한 영향력을 다시 일깨웠다. 영국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우리는 전쟁이 인플레이션, 채무불이행(디폴트), 기근의 방아쇠를 당겨왔다는 사실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며 “연결된 세계 금융시장이 충격을 더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서 벌어진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과 닮았다고 했다. 당시 전쟁은 1970년대의 ‘대(大) 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을 일으켰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 사태는 전쟁이 에너지, 식량 등 다양한 부문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양측이 휴전에 합의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은 에너지 등을 무기로 공격을 계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