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자료 삭제' 실무자 유죄…윗선 판결 '촉각'

법원, 공무원 3명 집행유예 등 선고
'지시 혐의' 백운규 재판에 영향
채희봉 前 靑비서관도 압력 의혹
文정부 고위급 인사 판결 '관심'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자료를 삭제해 감사원 감사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세 명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이들 공무원이 자료를 지워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고 판단했다. 실무자들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등 이번 사건의 ‘윗선’으로 지목받는 고위급 인사들이 어떤 판결을 받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료 삭제로 감사 7개월 지연”

대전지방법원 형사11부(부장판사 박헌행)는 9일 감사원법 위반·공용전자기록 등 손상·방실 침입 혐의로 기소된 산업부 국장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과장 B씨와 서기관 C씨에게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와 B씨는 감사원이 산업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기 직전인 2019년 11월께 월성 1호기 주요 정보를 담은 자료를 삭제하라고 지시하거나 삭제 행위를 묵인·방조한 의혹을 받고 있다. 부하 직원인 C씨는 같은 해 12월 2일 오전에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이 잡히자 면담일 전날 오후 11시께 정부세종청사 산업부 사무실에 들어가 약 2시간 동안 월성 1호기 관련 자료 530건을 지운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감사원이 요구한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삭제하기까지 해 감사원이 한국수력원자력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산업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며 “이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 기간이 예상보다 7개월가량 더 지연됐다”고 지적했다.산업부 공무원들은 재판 과정에서 “인사이동 과정에서 관행에 따라 자료를 삭제했을 뿐 감사 방해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포렌식을 몰랐더라도 자료 제출을 요구받은 상황이란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며 “다른 자료보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자료를 삭제하는 데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 사실 등을 고려하면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세 명에게 모두 집행유예를 선고한 데 대해선 “국민 신뢰가 훼손된 점 등을 고려하면 이에 상응하는 상당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과거 형사처벌을 받았던 적이 없었고 구속 기간 동안 반성할 시간이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백운규 등 윗선 유죄로 이어지나

이날 유죄 선고가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당시 고위급 인사들의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대전지법은 10일과 17일 백 전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수원 사장 등의 위법 혐의를 다룬 공판을 연이어 진행할 예정이다.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은 한수원이 대규모 손실을 볼 것을 알면서도 압력을 행사해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강행했다는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업무방해 등)를 받고 있다. 대전지검은 지난해 9월 백 전 장관의 공소장에 배임교사와 업무방해교사 혐의를 추가해 법원에 제출했다. 당시 한수원 수장이던 정 전 사장에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돼 있다.

법조계에선 지난해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온 검찰이 법정에서도 공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작년 8월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하는 등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와 산업부 등 관련 부처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김진성/오현아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