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포드, LG엔솔에 "4조 배터리 공장 짓자"

유럽 합작공장 건설 협의

연 40GWh 안팎 배터리 생산
포드, SK와는 튀르키예 공장 철회

업계 "상위업체에만 러브콜"
배터리업계 지각변동 본격화
SK온과의 튀르키예 합작공장 계획을 철회한 미국 포드가 LG에너지솔루션에 손을 내밀고 있다. 두 회사는 4조원가량을 투자해 유럽에서 연 40GWh 안팎의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합작공장 건설을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시장이 본격 성장하는 가운데 투자 여력과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경쟁력에 따라 전기차·배터리 업체들의 ‘지각 변동’이 속도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배터리산업, 새 판 짜기 시작

9일 업계에 따르면 포드는 LG에너지솔루션에 유럽 배터리 합작공장을 제안하고, 관련 협의를 진행 중이다. 장소는 튀르키예이며, 이 공장에서 만든 배터리는 현지 포드 공장으로 납품된다. 포드는 이를 통해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전기차 시장 공략에 속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포드는 지난해 3월 SK온과 튀르키예에서 연 최대 45GWh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배터리 판가 문제로 이견을 보여 계약을 철회하기로 했다는 게 SK온 측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자금 문제와 낮은 수율도 합작을 접는 이유로 보고 있다. 전기차 전환을 늦출 수 없는 포드는 대안으로 높은 수율과 자금력을 동시에 갖춘 LG에너지솔루션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포드 간 협상을 놓고 배터리산업 내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그동안 배터리 업체와 완성차 업체들은 급성장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 유럽 등에서 세 확장에 주력해왔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고금리로 인한 자금 조달 여건 악화, 본격적인 배터리 출하에 따른 품질 문제 등이 주요 변수로 부상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지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기술력을 갖춘 상위 업체엔 ‘러브콜’이 쏟아지고, 그렇지 않은 업체는 심하면 파산할 수도 있다”며 “양극화가 올해 배터리산업의 최대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완성차 업체의 합작공장 건설을 요청받는 상위 업체는 ‘기술적 해자’를 구축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CATL 등으로 좁혀지고 있다.

유럽·中 업체들은 자금난 직면

제너럴모터스(GM)와 미국에 합작공장을 짓는 LG에너지솔루션은 포드뿐 아니라 현대자동차, 르노, 혼다와도 합작공장을 추진 중이다. 도요타와는 배터리 납품 계약 체결을 논의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시행하며 마음이 급해진 이들 업체가 모두 LG에너지솔루션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게 공통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애리조나 공장 투자를 재검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회사 관계자는 “배터리 수요가 넘치는 상황에서 납품 단가 등 유리한 조건으로 공급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와 줄다리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LG에너지솔루션은 수주가 실적으로 이어지면서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회사는 지난해 매출은 25조5986억원으로 전년 대비 43.4%, 영업이익은 1조2137억원으로 57.9% 증가했다고 이날 잠정 실적을 공시했다.

삼성SDI도 마찬가지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GM은 이 회사에 배터리 납품을 요청해 초기 단계 논의를 하고 있다. GM이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에너지 사업을 도모하고 있어 삼성SDI의 원통형 배터리가 장착되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다른 배터리 업체들은 자금과 수율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해 잇따라 고전하고 있다. 배터리 공장을 준공한 뒤에는 수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완성차 업체로선 이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유럽에서는 영국 브리티시볼트 등이 투자자금을 유치하지 못해 공장 건설에 난항을 겪고 있다. 중국에서도 난립한 중소 규모 배터리 업체들이 서서히 정리될 것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루고 있다.

김형규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