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칼 뺀지 50일…'일자리 세습' 최대사업장 기아에도 시정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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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붙는 尹 노동개혁“기업의 필요성이나 채용 대상자의 업무능력과 무관한 기준을 설정해 구직 희망자 또는 다른 조합원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한다.”
60곳 중 57곳이 폐지 수순
포항 3곳도 자율개선 추진중
LGU+·효성重·현대위아 등
"자녀 우선채용 단체협약 위법"
전국 지역노동위서 판결 쏟아져
尹, 노조 채용비리와 전면전
'職수저'는 없다…징역형도 검토
지난해 12월 12일 경남지방노동위원회는 A기업의 단체협약 조항에 대해 이같이 판정하며 시정명령 조치를 의결했다. A사는 단체협약에 정년 퇴직자 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경남지노위는 “헌법상 평등권은 물론 채용 시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고용정책기본법 취지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60곳 전부 고용세습 철폐 추진
이처럼 작년 11~12월 전국 지노위에서는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각 기업의 단체협약을 위법으로 판정하고 시정명령을 의결하는 조치가 잇따라 나왔다. 정부가 지난해 8월 기준 100인 이상 사업장 중 단체협약에 고용세습 등 위법한 우선·특별채용 조항을 뒀던 6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정명령 조치에 들어간 뒤 본격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12월 29일에는 경기지노위가 기아의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기아 단체협약 26조에는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 퇴직자 및 장기근속자(25년 이상)의 자녀를 우선 채용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양지청은 해당 조항이 헌법상 평등권과 고용정책기본법 등을 위반한다고 판단했다. 시정명령 의결을 요청받은 경기지노위 역시 같은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기아에 시정명령이 내려지면 단체협약 개정을 위한 노사 간 논의가 불가피해진다. 기아 노조는 “정부가 노조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다”며 “단체협약 사수 투쟁에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년 퇴직자 고용세습 조항이 존재했던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9년 정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단체협약에서 이를 삭제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기아에 대한 시정명령은 산업재해 사망자 자녀 우선채용을 제외한 만큼 노조가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시정명령 이전에 고용세습 조항을 스스로 없애는 사업장도 늘고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샤니, 두원정공, 동원금속 등 38개 사업장에서 고용세습 조항 삭제와 같은 자율 개선이 완료됐다. 코카콜라는 시정명령을 받고 단체협약 변경을 이행했다.이로써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60개 사업장 중 57곳이 현재까지 자율 개선이나 시정명령 등 절차를 밟았다. 관할 자치단체가 시정명령을 통보하지 않은 포항 지역 사업장 3곳(OCI 포항공장, 동국산업, 현대성우오토모티브코리아 포항공장)도 자율 개선을 추진 중인 점을 감안하면 모든 사업장에서 고용세습 철폐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채용비리와 같은 노조 부패”
노동계는 작년 12월부터 기아를 비롯해 LG유플러스 효성중공업 현대위아 등 대규모 사업장에 지노위 시정명령 의결이 나오기 시작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같은해 11월 29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임기 중 노사 법치주의를 확고하게 세울 것이며 불법과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대통령실은 정부가 연내 마련할 공정채용법(채용절차법 개정안)에 고용세습을 채용 비리와 같은 불공정 채용 행위로 규정하고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당국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처벌 수위가 ‘최대 벌금 500만원’에 불과하다.
오형주/김일규/곽용희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