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난방 해법 히트펌프, 국내 활성화 가능할까

히트펌프는 이미 해외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인정받고 가정이나 건물에 설치 시 여러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설치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인지도가 낮아 보급율이 낮지만, 탄소중립을 위한 열 부문 온실가스 감축의 대안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경ESG] 이슈 브리핑
삼성전자 히트펌프 'EHS' 제품 라이프스타일 이미지. 사진=삼성전자 제공
집을 따뜻하게 데우면서도 에너지를 절감하고 탄소배출량이 적은 난방 방식이 있다면? 공기 열원 히트펌프는 기존에 사용하던 온실가스를 많이 내뿜는 화석연료 보일러의 대안으로 탄소중립과 넷제로 측면에서 전 세계인에게 각광받고 있다. 과거에는 겨울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히트펌프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히트펌프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우리나라처럼 겨울이 추운 지역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히트펌프를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지정하고 히트펌프 설치 시 다양한 보조금과 정책 지원을 해준다. 기본적으로 히트펌프는 실외기와 공조기를 통해 차가운 공기를 끌어와 실내를 차갑게 해주는 에어컨의 원리와 같다. 다만 냉매의 흐름이 역전 밸브에 의해 역전된다는 점이 다르다. 에어컨과 달리 히트펌프는 외부 공기의 열에너지가 가정 내부로 방출된다. 바깥 공기의 열에너지는 차가운 액체 냉매에 의해 실외기에서 차가운 가스로 변하고, 이 가스에 압력을 가해 뜨거운 가스가 된다. 이 뜨거운 가스가 실내 공기를 통과하면서 공기를 가열하는 원리다.
석유·LNG 난방의 대안…에어컨과 같은 원리

히트펌프가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 전기 히터에 비해 전기 사용을 약 50% 줄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석유 난방이나 천연가스(LNG)를 이용한 난방에 비해 탄소배출이 0에 가깝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사용할 경우 일부 탄소배출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지만,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이용하면 추가적 탄소배출이 없다. 이와 함께 히트펌프는 에어컨과 난방(냉난방) 겸용 공조 시스템으로 설치되기에 한 번 설치로 냉난방이 가능해 효율적이고, 기술개발로 효율이 높아지면서 전기에너지 사용량도 적은 편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고효율 히트펌프 설치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히트펌프는 일반적 석유 난방에 비해 연간 평균 1000달러(6200kWh), 전기 난방에 비해 평균 500달러(3000kWh)를 절약할 수 있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3개국은 히트펌프 보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영국은 ‘히트펌프 레디’ 프로그램으로 2028년까지 60만 대의 신규 히트펌프 설치를 목표로 한다. 보일러를 대체하는 히트펌프를 설치하며 보일러 대체 보조금(Boiler upgrade grant)을 지원한다. 독일은 2024년부터 매년 50만 대의 신규 히트펌프 설치를 계획하고 있다. 독일은 RHO(Renewable Heat Obligation) 제도로 건축물 열에너지 사용의 일정량을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공급, 생산하도록 의무화했다. 50m2 이상 신축 주거용, 비주거용 건물에 적용된다. 프랑스는 태양열과 지열에 보조금을 제공하며,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히트펌프 의무화를 위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7층 이하 신축 및 대수선 건물에서 가스 사용을 2023년부터 전면 금지하고, 2027년부터 고층 건물에도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유럽은 러·우전쟁으로 촉발된 러시아산 가스 수급 불안정으로 최근 에너지 보안 측면에서 가스보일러보다 히트펌프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에너지 가격 변동으로 유럽 내 히트펌프가 가스보일러 대비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 EU는 최근 에너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REPower EU’ 플랜을 수립하고 2026년까지 히트펌프 약 2000만 대, 2030년까지 6000만대 설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재생열에너지 보급 정책으로 화석연료 금지, 가스 혹은 석유보일러 신규 설치를 금지함으로써 재생열에너지 보급을 유도하고 있다. 2030년경에는 히트펌프가 가정용 보일러 사용을 대체하고, 2045년이 되면 산업용 보일러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에 발표한 EU의 재생에너지지침은 열 부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매년 1.3%p씩 확대해 재생에너지 달성 목표치의 40%까지 재생열에너지로 감당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가정용 공기열 히트펌프 설치 비용이 도시가스 대비 2~3배 비싼 편이라 초기 비용의 난관이 크다. 대도시의 경우 도시가스관이 대부분 잘 정비되어 있어 가스난방 설치비가 저렴하고 연결도 편리해 히트펌프보다 선호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일반 가정의 난방은 LNG로 온수를 흘려 바닥 난방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방 안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공기열 난방에 익숙지 않은 점도 인식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다만 가스 난방을 적게 틀면서 추가로 에너지 효율이 낮은 전기담요나 전열기를 쓰는 것보다는 히트펌프를 설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국내 전기요금이 저렴한 편에 속하고, 최근 천연가스 비용이 오른 부분이 있어 실제 사용에 드는 에너지 비용은 히트펌프가 저렴한 편이다. 가정용 히트펌프가 거의 보급되지 않은 반면, 바닥 난방을 할 필요가 없는 상업용 건물의 카페나 식당에서는 히트펌프가 조금씩 도입되는 추세다.
건물 탄소중립, 히트펌프 없이는 불가능

국내에서 공기열 히트펌프가 아직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점도 히트펌프 확산을 막는 걸림돌이다. 지열이나 수열 히트펌프는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공기열 히트펌프의 경우 지열과 달리 효율이 낮은 편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 때문에 일정한 효율 이상을 갖춘 히트펌프에 한해 신재생에너지 기기로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삼성, LG 등 히트펌프를 생산하는 가전업체들은 고효율 히트펌프를 생산해 미국, 유럽 등 해외시장에서 판매하며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어 국내 인프라 확충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민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한국히트펌프 얼라이언스 의장)는 “정부 정책이 전기, 그중에서도 발전에 집중하고 있으며 발전믹스의 비중 변화가 주된 사항이고, 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어 상대적으로 히트펌프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주된 에너지원으로서 이제 전기만이 아니라 열에너지의 전기화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히트펌프의 경우 지열·수열·공기열 순으로 효율이 낮아지는 측면은 있지만, 공기열도 효율을 높게 만들면 이득이 크다. 전기에너지가 100이라면 히트펌프는 외부에서 열을 흡수하기에 100이 아니라 120, 플러스알파가 되며 이 열은 자연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로 인정받을 수 있는 논거가 된다”며 “무엇보다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것보다 탄소감축의 이득이 크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현재 열에너지의 경우 지역난방 외에는 국가 차원의 정확한 통계가 없고, 가스 소비량 등 간접적으로 잡히는 경우밖에 없다”며 “열에너지의 구체적 통계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히트펌프 통합 로드맵을 세우고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전력수급 기본계획에 히트펌프 보급에 대한 적극적 반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히트펌프를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면 보급률이 높아질 것이므로 해외 사례를 참고해 히트펌프에 대한 지원과 보조금을 적절히 분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준영 한국산업기술시험원 수석연구원은 “건물 부문에서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상업이든 주거든 히트펌프 없이는 이룰 수 없다. 히트펌프 사용 시 전기요금을 보조하기 위한 누진세 개편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 이상(연면적 500m2) 건물을 지으면 의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하는데, 현재 태양광이나 지열 등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당장 2025년부터 제로에너지 건물(ZEB)이 민간에 확대되면 열공급을 담당할 히트펌프도 자연스럽게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공기열이나 하수열 등을 모두 인정해 히트펌프의 범주를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