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인태전략 원년…남북관계 매몰 벗어나 가치공유 연대"(종합)

연두 업무보고…"유사입장국 연대 공고화, IPEF·팹4 등 통해 국익 추구"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대북정책은 실패"…'원칙 있는 대북접근' 제시
정부가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독자적 '인도·태평양 전략' 실행 원년인 올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더욱 강력하게 추진하기로 했다. 외교부는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관으로 열린 2023년 외교부 연두 업무보고에서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업무 추진계획을 보고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후 브리핑에서 "인태 전략은 우리나라가 더 이상 한반도·동북아라는 지정학적 틀에 갇혀 있지 않을 것을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 한반도에서 인태로 초점 이동…인태전략 실행 본격화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전날 업무보고 사전 브리핑에서 "남북관계에 매몰된 외교에서 벗어나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파트너들과의 연대를 심화해 우리 외교의 동력을 강화하고 지평을 확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부가 외교의 중심축을 한반도 문제에서 인태라는 공간으로 옮기고 있다는 신호다.

지난해 말 첫 인태전략 발표가 그 분기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역대 한국 정부는 북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일·러의 동북아 냉전구도를 극복하기 위한 외교정책을 폈다. 그러나 최근 국제질서에서는 미중 간 전략경쟁 고조,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강대국 경쟁이 전면에 부각되며 다시 진영 간 대립이 격화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변화 속에서 한국도 한반도 문제에만 주력하는 패러다임을 벗어나 인태 지역을 무대로 가치를 함께하는 국가들과의 연대에 적극 뛰어들겠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 대한 복합적 도전이 심화하고 자유·민주·인권·법치 등 보편적 가치와 질서 수호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민주주의 국가들이 우리에게 가치 기반 외교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박진 장관은 "가치에 기반한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는 길이라는 점을 (보고에서) 강조했다"고 전했다.

정부는 한미일 차원의 안보협력과 지역·국제 현안 공동대응을 강화하고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국가들과의 협력도 증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의 'AP4', 태평양도서국에 대한 '푸른 태평양 동반자'(PBP) 협력 등을 통해서도 유사 입장국들과 연대를 공고화한다는 방침이다.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 이행 과정에서 규칙 기반 질서 증진을 위한 외교·국방 전략대화 활성화, 해양안보·방위산업·사이버안보 협력 확대, 역내 안보 사안 공조 등을 추진한다.

◇ 과학기술 외교 협력채널 신설…인권 논의 주도적 참여
경제안보에서는 한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 경제안보대화, 한미일 경제안보 대화체, 한·캐나다 외교·산업 2+2 고위급 경제안보대화 등 유사 입장국들과 새로운 협의체를 가동한다.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한·미·일·대만 4자 간 반도체 공급망 회복력 작업반(Fab4) 등 새로운 협력틀을 통한 능동적 국익 추구도 거론했다.

'Fab4'는 현재 예비회담 단계인데 본회담 참여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또 미국·유럽 등과 과학기술 외교 양자 협력채널을 신설해 신흥·첨단기술 관련 가치·안보 정책을 공조하고 협력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해외발 공급망 위기가 빈번해지는 만큼 재외공관에 조기경보시스템을 구축해 위험 요인을 선제적으로 파악하겠다고도 밝혔다.

박 장관은 "대외적으로는 주요국들과 경제안보 네트워크를 확충하고, 내부적으로는 이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공급망에서 인권침해 요소를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앞으로 한미 간 논의가 이뤄질지도 관심이다.

이에 조현동 차관은 "가치의 문제와 우리의 경제적 국익 간 균형을 맞춰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자 무대에서도 올해 3월 제2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미국과 공동 주최하는 등 민주주의 확산 기여를 확대하며 미국·유럽연합(EU) 등과 인권 현안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 '원칙 있는 대북접근'…억제·단념에 초점 맞출 듯
한반도 문제에서는 '원칙 있는 대북접근'을 제시했다.

정부는 북한이 핵·미사일 위협을 지속적으로 고조하는 것은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대북정책은 실패했고, 일방적 대북 유화정책은 우리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보공유·공동기획·공동실행 등 미국의 확장억제 실효성을 높이고 북한의 핵 개발을 단념시키기 위해 국제 제재 공조를 강화하는 방안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박 장관은 "미국의 확장억제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2+2 장관회의, 확장억제전략협의체 등 한미 외교·국방 공조 체제를 더욱 공고화하겠다"며 "북한이 불법 사이버 활동을 통해 국제 제재망을 우회해 핵·미사일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차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국제사회의 압도적 규탄 여론을 조성하고 신규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을 추진하며, 다양한 분야의 우방국 독자제재 연대를 확대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조현동 차관은 가치 공유국과의 연대로 한반도 문제 관리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중국과의 협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설사 공유하는 가치가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그간 등한시했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국제사회와 연대해 대응하겠다며 미국, EU와의 관련 양자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