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인 발길 끊기자 결국 백기…가산동 'W몰' 문 닫는다

부동산업체에 1600억대 매각
올 9월 영업종료 후 지식산업센터로 변경 예정
중국인 쇼핑객 급감 여파…경영부실 겹쳐 폐점 수순
서울 가산동 로데오거리의 대표 아울렛 ‘W몰’. /안혜원 기자
국내 도심형 아울렛(아웃렛)의 포문을 연 서울 가산동 로데오거리의 대표 패션몰 ‘W몰’이 문을 닫는다. 1996년 전신인 ‘원신아울렛’이 개점한 지 27년 만이다. 한때 서울 서남권 패션 상권을 대표하는 아울렛으로 꼽혔지만 매출 악화와 경영 부실로 폐점 수순을 밟게 됐다. 경기불황에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가산동 아울렛 상권을 찾던 중국인 쇼핑객 발길마저 줄어들자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W몰은 오는 9월 영업을 종료한다. W몰을 운영하는 원신더블유몰은 지난해 5월 부동산 개발업체인 예인개발에 아울렛 부지를 매각하기로 하고 매매 계약을 맺었다. 같은해 9월 말 소유권 이전이 이뤄지면서 영업 종료 절차에 들어갔다. 매각가는 1600억원 수준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고전하며 수익성이 악화된 게 직접적 매각 원인으로 꼽힌다.W몰은 1996년 지어진 원신아울렛이 모태다. 당시 운영사인 원신월드(현 원신더블유몰)는 주로 점퍼 및 청바지(죠다쉬), 면바지(지오다노) 등을 제조해 국내에 팔거나 일본·미주 등지에 수출하는 업체였는데 자사 이월 상품을 처분할 목적으로 원신아울렛을 열었다. 2007년 2월에는 기존 매장 부지 3만3000㎡(1만평)에 지하 4층·지상10층 규모 쇼핑몰 W몰을 열면서 본격적으로 도심형 아울렛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 가산동 로데오거리에 위치한 아울렛 W몰 내부 전경. /안혜원 기자
원신더블유몰의 지주회사인 이도홀딩스 지분을 창업주 가족들이 보유해 사실상 회사를 소유한 구조다. 이도홀딩스 지분은 이우혁 창업주의 딸인 이윤신 회장이 82.6%, 손녀 원마니 이사가 0.70%를 보유했다. 나머지는 자사주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말 주식을 소각하는 대신 그만큼 대금을 지급하는 유상감자를 실시했다. 이를 통해 최대주주인 이 회장 등이 자금을 회수해 나갔다. W몰을 매수한 예인개발은 건물을 허물고 이 일대를 지식산업센터로 개발할 예정이다.

저무는 도심형 아울렛 시대

유통업계에서 아울렛은 소비 침체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채널로 통한다. 저렴한 가격과 폭넓은 제품 구색을 갖췄기 때문이다. 2020년 20조원대 수준까지 커졌던 아울렛 시장 성장세가 꺾이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계기가 됐다. 특히 대형 도심형 아울렛이 밀집한 가산동 일대는 외국인 거주 비중이 높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지역이라 타격이 컸다. 대량으로 물건을 떼어다 중국에서 파는 ‘따이궁(보따리상)’ 매출 기여도도 상당했지만 코로나19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코로나19 이전 가산동 일대 아울렛들의 중국 관련 매출 비중은 30~40%에 달했던 것으로 추산된다. 가산동 아울렛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대형 비닐봉지나 박스에 옷을 닥치는 대로 매집해 들고 나가는 중국인 보따리상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정말 보기 드물다”며 “VIP(우수고객) 회원 상당수가 이들 보따리상이었던지라 VIP 매출 비중도 크게 빠졌다”고 전했다.

스타필드 등 교외형 프리미엄 아울렛이 인기를 끌면서 도심형 아울렛의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도 한 요인. 도심형·창고형 아울렛들은 중저가 패션 브랜드 중심으로 이월 제품을 쌓아두고 파는 방식을 택한다. 1990~200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최근엔 실적이 예전만 못한 분위기다. 소비자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아울렛 시장 역시 명품이나 고가 패션 브랜드 중심인 프리미엄 아울렛이 대세가 됐다. 이왕이면 도심형 아울렛보다 야외 시설인 데다 다양한 즐길거리가 갖춰진 교외형 아울렛을 선호하는 현상도 강해졌다.

앞서 1세대 도심형 아울렛의 대표주자 격인 이랜드그룹 산하 이랜드리테일은 2001아울렛 수원남문점, 대구 동아아울렛 본점, 송도 NC커넬워크, 뉴코아아울렛 모란점과 안산점 등 5개 점포를 폐점했다. 세이브존도 2011년 전북 전주점 이후 10년 넘게 신규 출점하지 않고 있다.

가산 아울렛타운 지각 변동

부실 방만경영으로 누적된 적자가 폐업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원신더블유몰은 최근 2년(2020~2021년) 동안 58억원이 넘는 누적 손실을 냈다. 2021년 매출은 전년 대비 9.5% 줄어든 약 192억원에 그쳤다. 전성기를 구가한 2011년 매출(약 440억원)의 반토막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회사 측은 시장 변화에 따른 내수 부진 등을 폐점 원인으로 설명했지만, 거듭된 신사업 실패와 부실 자회사에 대한 자금 지원 등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가산동 로데오거리 아울렛 W몰 내부 전경. /안혜원 기자
2020년에는 세종시에 W몰 2호점을 열었으나 개점 1년 만에 철수했다. 10여년 전 설립해 거의 매년 적자를 내온 도자기업체 ‘이윤신의이도’ 등 관계사에 대한 자금 지원 등으로 재무 부담도 컸다. 원신더블유몰은 이윤신의이도가 보유한 차입금에 연대보증을 제공하는 등 관계사를 지속 지원해 왔다. 수익 구조상 원가 부담이 크지 않아 우량 업체로 꼽힌 W몰이었지만 한때 100여명에 육박했던 직원 수는 최근 30명 내외까지 줄었다. 이 회장은 W몰은 물론 경기 여주의 이윤신의이도 본사(46억4800만원)와 서울 가회동 사옥(112억원) 등 부동산도 지난해까지 대부분 정리해 현금화했다.

W몰 폐업으로 가산동 아울렛 시장 구도도 1위 마리오아울렛과 현대시티아울렛 양강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 아울렛이 밀집한 가산로데오거리 일대는 도심형 아울렛 업계 격전지로 꼽혀왔다. 마리오아울렛이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한 가운데 W몰과 현대시티아울렛이 2위 자리를 놓고 다투는 형국이었다. 가산동 아울렛타운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 2단지에 마리오아울렛, 현대시티아울렛, 롯데팩토리아울렛 등 재고의류 전문점이 밀집했다. 한섬, 블랙야크 등의 의류업체들도 직영 아울렛 매장을 두고 있다.자영업자와 중소 브랜드로 구성된 300여곳의 W몰 패션 브랜드 입점 업체들은 올 9월까지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W몰 관계자는 “규모를 줄여서라도 아울렛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적절한 장소를 찾는 중”이라며 “대체지가 마련될 때까지 영업 기한을 일부 연장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임직원 고용 승계도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