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거짓말의 작동 원리

이정호 사회부 차장
세상 거짓말이 차고 넘치는 곳이 정치판이다. 적어도 한국 정치의 속성이 정권 유지와 권력 창출을 위한 진흙탕 싸움이란 점을 생각하면 거짓말은 정치인이 외면하기 힘든 달콤한 유혹일 것이다. 궁지에 내몰렸을 때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로, 때론 정적을 곤궁에 빠뜨리거나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회심의 카드로 말이다. 거짓말은 정치판의 가장 효과적인 공격·방어 수단이지만 국민이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정치판 생리에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여전히 견디기 힘든 건 ‘나의 승리가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듯 의식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악의적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우연히 잡지에서 읽은 한 국내 신경정신학자의 분석이 명쾌하다. 그는 이런 정치인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을 과도한 자기애적 성향으로 규정했다. 자신은 특별하고 선택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거짓말을 해도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를 따르는 지지자라면 내가 하는 거짓말도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극단적 편향성을 갖기도 한다.

판단 흐리는 정치판 거짓말

시간이 흐르면 반복된 거짓말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지지자들이 나타난다. 혹여 거짓으로 판명이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잖아”라며 오히려 정치인을 두둔하는 세력도 등장한다. 거짓 의혹을 문제 삼는 공권력과 여론을 향해선 ‘정치적 억압’ ‘조작된 수사’라고 또 다른 거짓 선동을 내뱉으면 그만이다. 이 과정에서 나를 공격한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되돌아가는 기막힌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거짓말을 해도 자신에게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순간의 희열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0일 성남FC 불법 후원금 사건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했다. 민주당은 현직 제1야당 대표 소환은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자 ‘사법 쿠데타’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불법·거짓 의혹에 휩싸인 정치인이 야당 지도자가 된 것도 처음이다.

사법 리스크 자초한 민주당

이번 검찰 소환조사와 별건인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은 개인 투자자 7명이 3억5000만원을 투자해 그 1100배인 4040억원을 편취한 공공 사기극이다. 공모 세력 중 일부가 이 대표를 이 사건의 배후 구심점으로 지목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때 방송에 출연해 대장동 개발 사업의 핵심 실무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업처장을 알면서도 몰랐다고 말한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작년 9월 기소됐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망각을 생명줄로 삼는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덮는 혼돈 상황에서 잊힌 거짓말은 간혹 셀프 면죄를 받곤 한다. 이어령 선생은 생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가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어요. 요즘 거짓말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잊어서 그래요. 자기가 한 일을 망각의 포장으로 덮으니 어리석죠. 부디 덮어놓고 살지 마세요”라고 했다.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 신뢰에 기초한다.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 대표가 자신을 둘러싼 불법·거짓 의혹부터 깨끗이 털어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