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독점 논란에 존망위기…결국 다양성 되살린 골든글로브

아시아·라틴·흑인 등 대거 수상…"다양성이 중앙무대 차지"
사회자 "저 흑인이라 사회자 됐어요"…주최측도 흑인 회원 영입
부패 의혹과 인종·성차별 논란으로 거의 존폐 위기에까지 몰렸던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10일(현지시간) 화려한 다양성을 앞세워 대중의 시선을 다시 사로잡았다.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에서 열린 이날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사회자의 첫 한마디부터 의미심장했다.

흑인 코미디언인 제러드 카마이클은 무대에 서자마자 대뜸 "어떻게 제가 여기 (사회자로) 섰는지 말해줄게요.

흑인이라서"라고 말하는 '자학 개그'를 선보였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아카데미와 함께 미국 양대 영화제로 꼽히지만, 최근 2년간 할리우드 영화계의 보이콧 대상이 됐다.

주최측인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에 흑인 회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 치명타였다.

작년에는 주관 방송사 NBC가 중계방송을 중단했고, 스타들도 대거 불참을 선언해 사실상 시상식으로서 기능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카마이클은 이런 주최측의 '이력'을 직접 겨냥하며 "인종차별적 조직이라고까지 부르지는 않겠지만,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할 때까지 흑인 회원이 없었다"고 꼬집어 관객의 웃음을 이끌었다.

플로이드는 2020년 경찰 체포 과정에 숨져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인물이다.

할리우드리포터에 따르면 HFPA는 그동안 절치부심하기라도 한 듯, 실제로 회원 96명 가운데 흑인 회원 6명을 최근 추가 영입했다. 이들은 다른 비회원 투표권자 103명과 함께 골든글로브 수상작을 골랐다.

심사위원단의 다양성이 확보된 영향인지, 결과의 다양성도 빛났다.

아시아권, 흑인, 라틴계 스타들이 대거 중앙무대를 차지했다고 스페인 EFE통신은 전했다.

가장 관심을 끈 수상자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여배우 량쯔충(楊紫瓊·양자경)이었다.

량쯔충은 다중우주(멀티버스) 세계관을 담은 SF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씽')에서 뮤지컬·코미디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의 수상소감은 전 세계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겪었던 인종차별 경험을 소개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은 놀라운 여정이자 싸움이었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날이 가고 해가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기회는 점점 더 줄어든다"며 "하지만, '에브리씽'이라는 최고의 선물이 찾아왔다.

이 영화는 때로는 눈에 띄지 않는 우리 주변의 여성에게 경의를 보내는 영화"라고 말했다.
인도 영화도 최초의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인도 영화음악가 M.M. 키라qk니는 'RRR: 라이즈 로어 리볼트'로 주제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가 꺾은 경쟁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재가 노래하는 곳), 레이디 가가(탑건: 매버릭), 리애나(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등 최고의 팝스타들이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블랙 팬서:와칸다 포에버'의 앤절라 바셋, '애봇 엘리먼트리'의 퀸타 브런슨과 타일러 제임스 윌리엄스, '유포리아'의 젠데이아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로이터 통신은 다양성을 반영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평생 공로상을 받은 '글리'와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의 프로듀서 라이언 머피는 작품 속 동성애자 캐릭터를 언급하면서 성 소수자 인권을 역설했다.

공로상 격인 캐럴버넷 상은 성소수자 텔레비전 각본가 라이언 머피가 받았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최초의 트랜스젠더 골든글로브 수상자인 M.J. 로드리게스, 흑인 동성애자 사상 첫 에미상 남우주연상 수상자 빌리 포터 등 이날 시상식에 참석한 성소수자(LGBT) 스타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오늘을 지켜보는 아이들에게, 이들을 가능성의 증거로 내밀고 싶다. 앞에 길이 있다면, 이 사람들을 북극성으로 삼으라"고 당부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