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택배노조와 교섭하라"…엇갈린 판결에 속타는 기업

1심, 중노위 판정 유지
하청노조와 소송 기업들 비상

"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
원청이 패소한 건 이번이 처음
현대重 1·2심 판결과 정반대
CJ대한통운 측 "항소할 것"

기업, 하청 교섭요구 시달릴 듯
野 '노란봉투법' 밀어붙일 수도
CJ대한통운이 하도급인 대리점 택배기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법원 판결이 12일 나오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초 경기 광주시 CJ대한통운 성남터미널에 택배 근로자들이 모여 있다. /한경DB
CJ대한통운이 하도급인 대리점 택배기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고 본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도급 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두고 벌어진 소송에서 원청이 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청 손을 들어준 과거 판례와 다른 결론이 나오면서 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하도급 노조들도 “원청과의 교섭권을 보장해달라”며 소송과 파업까지 불사할 가능성이 커져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원도 택배노조 손들어줘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부장판사 정용석)는 12일 CJ대한통운이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 판정 취소소송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기본적인 노동조건에 관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된다”며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CJ대한통운의 주장은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18년 같은 쟁점으로 금속노조가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1·2심에서 패소한 것과는 정반대 결과가 나왔다.

이번 사건은 중노위가 2021년 6월 택배노조가 CJ대한통운과 단체교섭할 권리가 있다고 판정하면서 비롯됐다. 앞서 2020년 11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가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의 사용자가 아니다”며 택배노조의 구제 신청을 각하한 지 7개월 만에 판정이 뒤집혔다. 당시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실질적으로 택배기사 업무에 지배력이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정에 불복한 CJ대한통운은 그해 7월 판정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택배노조는 이번 판결 이후 더욱 적극적으로 CJ대한통운을 상대로 교섭 요구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진경호 전국택배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날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어 “CJ대한통운이 또다시 교섭을 거부하면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형사 고발하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교섭을 강제하는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 측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며 “판결문을 받는 대로 면밀히 검토한 뒤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도급 노조 교섭 요구 빗발치나

이번 판결은 산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중노위에 이어 법원까지 하도급 노조 측 손을 들어주면서 원청을 상대로 공격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근거가 더욱 두터워져서다. 법조계에선 1·2차 하도급 업체를 둔 완성차 제조사뿐만 아니라 외부 용역업체에 청소나 경비 등을 맡기는 기업까지도 하도급 노조의 교섭 요구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1년7개월 전 중노위가 택배노조의 원청 교섭권을 인정한 뒤 산업계에선 하도급 노조가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일이 잇따랐다. 현대자동차·기아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롯데글로벌로지스 한국GM 등이 같은 문제로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 롯데글로벌로지스 현대제철이 연이어 중노위로부터 하도급 노조와 교섭할 의무가 있다는 판정을 받으면서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던 상황이었다.

노란봉투법 입법 움직임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노란봉투법은 사측이 불법행위를 한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가, 수정 과정에서 하도급 근로자의 원청 교섭권을 보장하는 내용까지 추가됐다.법조계에선 현대중공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진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금속노조와의 교섭 의무를 두고 법원에서 3년여간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갈수록 민감한 사안이 되면서 대법원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판단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김진성/곽용희/오현아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