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실력만 보고 인재 뽑은 나폴레옹…능력주의가 강대국을 만들었다

능력주의의 두 얼굴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이정민 옮김 / 상상스퀘어
640쪽|2만7800원

영국 언론인이 쓴 '능력주의의 역사'
개인 능력·업적따라 보상 받는 사상
타락한 서구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
프랑스 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부상

마이클 샌델 "엘리트 교육이 이제는
특권 대물림하는 수단 변질" 비판에
"수능 없애고 추첨제로 인재 뽑는 것이
능력주의보다 과연 더 공정한가" 반박
Getty Images Bank
“개인이 재능과 노력, 업적에 따라 보상받아야 한다는 능력주의는 혁신적인 사상이었다.”

<능력주의의 두 얼굴>이 전하는 메시지다. 능력주의는 태어날 때의 사회적 지위가 평생 따라다녔던 구(舊)세계를 날려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저자 에이드리언 울드리지는 영국 언론인이다. 옥스퍼드대를 나와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20여 년간 일했고, 2021년 미국 블룸버그로 자리를 옮겼다.그가 이 책을 쓴 건 최근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니얼 마코비츠 예일대 교수는 2019년 펴낸 <엘리트 세습>에서 “엘리트 교육이 이제는 후손에게 특권을 물려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꼬집었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2020년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가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울드리지도 인정한다. 능력주의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결함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 SAT(미국의 대학 수학능력 평가시험)를 없애고, 샌델의 주장처럼 추첨제로 각 대학에 인재를 고르게 배치하면 문제가 사라질까. 그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능력주의에 결함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대안 체제와 비교해 결함이 더 많은지 적은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그는 역사를 돌아보자고 한다. 책은 능력주의가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여러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는데, 간결하면서 빠른 보폭의 문장은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중국 명나라 역시 능력주의를 앞세운 나라였다. 이탈리아 출신인 마테오 리치가 학문적 소양을 인정받아 황실 고문으로 위촉됐고, 밑바닥 출신도 시험만 통과하면 고위 관료가 될 수 있었다. 송나라 때 체계를 갖춘 이 시험 선발 제도는 외국인들 눈에도 혁신으로 여겨졌다. 리치를 비롯한 수많은 유럽 학자가 중국의 시험 제도를 타락한 서구 사회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구에선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능력주의가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능력주의는 1789년 제정된 유럽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에도 명시돼 있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한 만큼 덕성과 재능 이외 기준은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에 따라 모든 공직, 지위, 일자리에 지원할 권리를 갖는다”고 했다. 이런 생각은 볼테르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과 당대의 소설, 연극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져나갔다.

강대국으로 떠오른 모든 나라는 능력주의를 앞세웠다. 나폴레옹은 계급과 상관없이 참모를 고용했고, 누구든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학 입학 자격시험을 부활시켰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는 그랑제콜을 설립한 이도 나폴레옹이었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에게 굴욕을 당한 독일도 능력주의를 받아들이고 난 뒤에야 프랑스를 능가하는 국력을 얻을 수 있었다. 영국 산업혁명의 선구자들부터 20세기 싱가포르의 부상까지 능력주의의 효용을 보여주는 사례는 무궁무진하다.다만 아무리 좋은 제도와 사상도 시간이 흐르면 변질되기 마련이다. 능력주의도 그런 단계를 거치고 있다고 책은 지적한다. 엘리트 부모들은 자신의 유전자, 돈, 인맥을 총동원해 자녀에게 최고의 교육을 한다. 미국 명문대들이 부유층 자제들에게 입학 특혜를 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치권에선 연줄로 자기 사람을 앉히는 정실 인사가 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능력주의를 버리는 것은 답이 아니다. 저자는 플라톤에서 다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능력주의에 대한 모든 개념은 플라톤에서 나왔다. 그는 여성도 훌륭한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시대를 앞섰다. 플라톤의 능력주의는 엘리트주의로 이어지지만, 그 목표는 개인의 부나 쾌락이 아니라 공동체의 번영이었다. “훌륭한 자질을 가진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서 데려와 사회공동체에서 키워야 한다”는 논란 많은 주장을 폈지만 핵심은 명확했다. 능력을 통한 성공이 다른 능력 있는 이들의 부상을 막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처럼 아이를 부모와 떼어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제도적으로 능력주의의 결함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다만 단단히 여물지 않았다. 이 책이 결론에 가서 힘을 잃는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왜 능력주의가 필요한지, 설득력 있는 얘기를 들려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