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위기 경영, 배수진을 칠 때와 말아야 할 때

조원경 UNIST 교수
일러스트=추덕영 기자
2023년 경기 둔화 우려 속에 삼성전자를 비롯한 유수 기업이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경기가 본격 하강 국면에 들어서자 삼성전자마저 허리띠를 졸라매는 배수진을 친 것이다. 문득 제프 베이조스가 아마존 창업 후 책상 상판보다 싼 문짝을 사서 책상 다리 네 개를 붙인 기억을 소환해 본다. 세계적인 갑부가 된 베이조스는 문짝을 보며 가난하던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혁신 요소로서 근검절약을 강조했다. 비용을 절약한 사원에게 ‘문짝책상 상’까지 수여했다.

삼성전자가 그의 생각을 차용한 걸까? 베이조스는 제약이 재치, 성취, 발명을 낳는다고 생각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의 생각은 전통 경제학 이론이 내세우는 비용, 소득 같은 제약조건 하에서 생산, 효용을 극대화하는 원리와 상당히 닮았다. 고객만족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어떻게 최적화하느냐에 골몰한 그의 초심은 2023년 내내 경영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대부분의 기업은 위기 상황에서 고객만족이란 불변의 제약조건을 두고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밖에 없다. 돈 새는 구멍을 찾아내 비용을 줄이고 고객에게 더 나은 제품을 제공하는 게 지속 가능한 성장의 본질이다.

아마존은 가두리 생태계 양식장 전략으로도 유명하다. 전자상거래를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자의 눈앞에 들이미는 ‘아마존만 믿으면 된다’는 신빙성 있는 위협(credible threat) 전략으로 성공사례를 만들어 왔다. 신빙성 있는 위협이란 공약을 실행하는 게 이행자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성취에도 적용될 수 있다. <레미제라블>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속옷까지 몽땅 벗어 하인에게 준 뒤 해 질 무렵 옷을 가져오라 했다.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 간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가두리 기법(Enclosure Technique)이라고 한다. 대문호지만 놀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이라 나름 배수진을 친 것이다.가두리나 배수진을 스스로 치는 게 항상 옳은 일일까? 능력도 안 되는데 함부로 배수진을 치면 실패해서 오뚝이처럼 일어서기 어렵다. 능력이 없는데 이를 악물고 일하면 마음만 피폐해진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뒤 신립 장군은 충주 근처 탄금대에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위치가 적당하지 않아 조선 관군은 대패하고 국왕은 평안도로 피란하게 됐다.

전통 경제학에서 제약조건은 다른 모든 상황이 불변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세상에 변하는 게 한둘인가? 주어진 전략이나 제약에서 최적을 찾기보다는 우선순위를 고르는 게 더 현명한 경우도 많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나 환경이란 장애물과 부딪힐 때는 피할 수 있다면 벗어나 생각을 가다듬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다.

배수진은 각오를 다지는 데 좋을 수 있으나 의사결정의 시야를 좁히는 맹점이 있다. 그릇의 크기가 어느 정도 된 사람은 내공이 있기에 제약이 있어도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배수진 전략은 대안만 없앤다.

기업도 위기일수록 배수진을 치는 것 못지않게 근로자의 창의와 열정을 부르는 환경을 균형 있게 조성해야 한다. 전략에 내포된 위협이나 약속은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게임이론의 규칙이다. 행여 과욕이나 과신에서 자신을 신빙성 있다고 믿는 게 아닌지 냉정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