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거 공화국'의 민낯…2463명 중 구속 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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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된 불법점거작년 11월부터 12월 말까지 서울 강북구청 1층 민원실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강북구도시관리공단 소속 노조원 수십 명이 친 텐트와 고압 가스통으로 아수라장이었다. 평일 업무시간에 민원실 데스크를 식탁 삼아 라면을 끓여 먹고 텐트 속에 누워 고함을 치는 등 무법천지 상황도 발생했다.
처벌은 사실상 전무
강북구 관계자는 “수당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공단 소속이 아닌 민주노총 노조까지 몰려와 구청장과 민원인을 위협했다”며 “두 달 이상 불법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발생하는 불법 점거로 직·간접적 사회 손실이 커지고 있다. 민간 사업장과 정부 기관, 공공 광장, 공원은 물론 재개발사업 구역에서도 법과 공권력을 무시한 무단 점거가 끊이지 않는다. ‘버티면 통한다’ 식의 극단적 위협과 일상화한 재산권 침해로 인한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전수조사한 2018~2022년 사업장 점거 파업 관련 피해액은 4조9760억원에 달했다. 불법 점거에 직접 연루된 노조원만 2463명이다.
하지만 법을 비웃는 무법자를 처벌하는 시스템은 완전히 고장 나 있다. 지난 5년간 불법 점거 연루자 가운데 경찰이 구속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점거를 푸는 대가로 노조에 선처를 약속하는 관행 때문”이라며 “경찰 역시 노사 합의를 이유로 불법이 발생해도 적극적인 수사에 나서지 않는다”고 지적했다.손해배상 청구는 더 힘들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노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금액은 950억1000만원이다. 이 중 법원이 인용한 금액(1심 판결 이상)은 5억2000만원(피해액의 0.01%)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파업 손실에 면죄부를 주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불법 점거에 대항할 마지막 수단마저 사라지는 것”이라며 “사업장이 노조의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우섭/구교범/원종환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