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연탄, 이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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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연탄

이정록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태헌의 한역]
煉炭(연탄)

父親似煉炭(부친사연탄)
氣孔卽火孔(기공즉화공)
家中低暗處(가중저암처)
太息以火湧(태식이화용)
火孔太喘喘(화공태천천)
父親易碎裂(부친이쇄렬)
去時乃方始(거시내방시)
能白如晝月(능백여주월)

[주석]
· 煉炭(연탄) : 연탄.
· 父親(부친) : 부친, 아버지. / 似煉炭(사연탄) : 연탄과 같다.
· 氣孔(기공) : 기공, 숨구멍. / 卽(즉) : 곧, 곧 ~이다. / 火孔(화공) : 숨구멍.
· 家中(가중) : 집 안. 원시의 “그 집”을 살짝 고친 표현이다. / 低暗處(저암처) : 낮고 어두운 곳.
· 太息(태식) : 한숨. / 以火湧(이화용) : 불로 솟다, 불로 솟구치게 하다.
· 火孔(화공) : 불구멍. / 太(태) : 너무, 지나치게. / 喘喘(천천) : 헐떡거리다, 헉헉대다.
· 易(이) : 쉽다, 쉬이. / 碎裂(쇄렬) : 부수어지고 찢어지다, 부서지다.
· 去時(거시) : 갈 때, 떠날 때. / 乃(내) : 이에. / 方始(방시) : 비로소
· 能白(능백) : 하얘질 수 있다. 원시의 “창백해지지”를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 如晝月(여주월) : 낮달과 같다, 낮달처럼.[한역의 직역]
연탄

아비란 연탄과 같아
숨구멍이 곧 불구멍이지
집 안의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솟게 하지
불구멍으로 너무 헉헉대어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에야 이에 비로소
낮달처럼 하얘질 수 있지

[한역 노트]
연탄의 속성에 대한 통찰을 통하여 가장으로서의 아버지의 역할과 비애를 시화(詩化)한 이 시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아버지는 아마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일찍이 김현승 시인이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에서,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라고 했듯이, 저마다 하는 일이 달라도 아버지라는 역할은 그리 다르지가 않다. 비록 맞벌이로 어머니의 역할 분담이 커졌다고 할지라도.....연탄이 겨울을 덥히던 시절이나 그 시절에 대한 추상(追想)이 머물던 때에 지어졌을 것으로 보이는 이 시를 처음으로 대한 순간에, 역자는 엉뚱하게도 그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코믹(Comic)한 동시 하나를 떠올렸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제법 오래전부터 온라인 공간 여기저기에서 초등학생이 지은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는 이 동시는 제목이 <아빠는 왜?>이다. 이 시에서 구현된 재기발랄하고 때 묻지 않은 동심을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독자이자 아빠의 한 사람으로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쳇말로 웃프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역자의 술친구 가운데 하나가 언젠가 “사람은 모두 기계(器械)”라는 나름의 지론(?)을 다소 과격하게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 친구에 의하면 애들은 돈 쓰는 기계이고, 애들 엄마는 돈으로 음식 만드는 기계이며, 애들 아빠는 돈 버는 기계라는 것이었다. 술자리의 담화가 으레 그렇듯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것도 못 되지만, 역자는 솔직히 그날 이후로 이 말에 어느 정도 수긍해왔더랬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소개한 이 시를 보고 동시까지 떠올리게 되었으니 마음자리가 어찌 짠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에서 설정된 연탄의 위치는 가장 낮은 데서부터 온기를 쏘아 올려 온 집과 온 가족을 따뜻하게 해야 하는 아버지의 자리를 나타낸다. 그리고 연탄이 불구멍으로 뿜어 올리는 열기는 당연히 아버지가 자신의 역할을 애써 수행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역자는 이 시를 음미하다가 문득 연탄 색의 변화에 관심이 쏠렸다. 시에서는 소임을 다한 연탄의 ‘창백’한 흰빛만 얘기하고 있지만, 타고 있는 연탄의 붉은빛을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시에는 연탄의 숨겨진 색 하나가 있는데, 바로 검은빛이다. 검다는 것은 아직 몸을 태우지 않는 단계, 곧 아버지가 되기 이전의 단계이므로 자기만의 시간을 향유하고 있는 미혼의 시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검은 연탄은 자신을 뜨겁게 불태울 가능성과 미래를 앞에 두고 있지만, 검은 채로 일생을 보내거나 심지어 부서지기도 할 운명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연탄의 하얀색은 자기의 소임을 다했다는 의미에서 안식(安息)의 색깔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촛불은 다 타야 초의 눈물이 비로소 멎고, 연탄은 다 타야 비로소 흰빛으로 바뀌게 된다. 자기 소임을 다하고 꺼져버린 촛불이나 하얗게 식어버린 연탄은 정말이지 거룩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탄을 닮은 아버지의 일생 또한 그처럼 거룩할 것이다.

다 탄 연탄이 희다는 것과 더불어 쉬이 부서진다는 것은 아버지의 비애를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난 후에 물러날 시점에 선 아버지는, 세월에 풍화된 돌이 쉽게 부서지듯, 헉헉대던 삶의 불구멍 탓에 아버지는 연탄재처럼 쉬이 부서질 수 있다. 어느 시인의 얘기처럼 우리가 연탄재를 발로 차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또한 있을지 모르겠다.

이 시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다 탄 연탄의 무게는 생각 밖으로 가볍다. 책임과 의무라는 그 중압감 아래서, 사랑과 열정으로 전신을 다 태운 아버지라는 연탄의 에너지는, 가족의 따뜻함으로 치환되어 빠져나갔기 때문에 가벼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며 근육이 줄어들고, 머리숱이 줄어들고, 몸무게가 줄어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연탄이 무게를 비워 가벼워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역자는 세상에서 아버지라는 이름보다 더 무거운 것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슬퍼도 슬프다고 할 수 없고, 무서워도 무섭다고 할 수 없으며, 그 흔한 눈물조차 보여서도 안 되는 아버지의 자리는 고독하기까지 하다. 아, 그 버거운 아버지라는 이름이여!

역자는 9행으로 된 원시를 오언 8구의 고시로 한역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시의 제3구인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은 구(句)가 넘쳐 부득이 한역을 생략하였다. 한역시는 짝수 구마다 압운하면서 전4구와 후4구의 압운을 달리하였다. 그리하여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孔(공)’, ‘湧(용)’과 ‘裂(열)’, ‘월(月)’이 된다.

2023. 1. 17.<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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