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2000억 '잭팟' 터뜨렸는데…남은 건 무기력뿐? [긱스]

유효상 유니콘 경제경영연구원장 기고
스타트업은 그 여정의 끝이 있습니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에 성공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창업자는 한순간 유명 인사가 되고, 많은 이들이 부러워합니다. 큰 부(富)를 누릴 수 있기도 합니다. 도달하기가 어렵다 보니 고민해볼 기회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유니콘 경영경제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있는 유효상 전 차의과대 경영대학원장은 준비 없이 다가온 ‘엑시트(Exit)’는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에 매몰되는 ‘활동의 함정(activity trap)’에서 벗어나 창업 초기부터 사업의 ‘끝’을 고민하라는 것이 그의 주문입니다.

'엑시트'와 '해피엔딩'은 같지 않다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창업한 지 4년밖에 안 된 회사를 2000억원이 넘는 금액으로 매각하여 많은 스타트업의 부러움을 사고 있는 ‘안트러프러너(Entrepreneur·혁신 창업자)’를 만났다. 미디어는 그에게 ‘성공’이라는 왕관을 씌워주었고, 시끌벅적한 대관식이 끝난 후 오랜만의 만남이라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꼈다. 스타트업 매각 규모로는 주목할 만하고, 무엇보다 ‘엑시트’를 하고 난 후 좋은 모델이 거의 없는 우리 스타트업계에 바람직한 선례가 될 스토리를 발굴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던 탓이다. 하지만 그날의 만남은 깊은 공허함만 남겼다.

스타트업계는 그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었다. 연쇄 창업에 도전하거나,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투자자로 변신하거나, 아니면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측들이 많았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성숙한 나라에서는 성공한 안트러프러너들의 행보가 대개 이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이른 은퇴를 선택한 것이라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겠지만, 그보다는 예상치 못한 시기에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겪는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그의 인생 목표는 마치 수중의 돈 자체를 지키는 것인 듯 보였다. 주변을 경계하고, 어렵게 쌓은 인적 네트워크를 스스로 단절했다. 뚜렷한 목표와 계획은 없지만, 그렇다고 은퇴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창업 후 고난의 행군을 거듭하던 시기에도 생기를 잃지 않았던 눈빛과 여유로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다시 인생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를 찾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을 감행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원인을 단 한 가지로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스타트업 여정의 최종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했다. 그러나 정작 이후 삶의 목표와 계획이 전혀 없었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기업가치가 커지고, 큰 금액으로 회사를 매각해 부자가 되는 건 바람직한 스타트업 생태계의 게임의 법칙이자 가장 성공적인 엑시트 유형이다. 그러나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이 안트러프러너 자신에게 반드시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경제적 성공을 거둔 안트러프러너 중에는 회사 매각을 후회하고, 무기력과 우울증세, 정체성 상실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트러프러너들이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는 까닭은 성공의 결과가 곧 행복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다수의 안트러프러너와 예비 창업가들은 ‘왜 스타트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혹은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본질을 벗어난 답이다. 성공이 스타트업의 목표가 되려면, 어떤 성공을 원하고, 미래의 삶에 왜 그런 성공이 필요한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가령 부자가 목표라면, 부자가 된 후 많은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계획하는 것이 순서다.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역시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구체적 삶의 모습을 그려 놓아야 한다.

성취한 부가 크면 후유증은 심하다

스타트업의 여정은 한 편의 게임과 같다. 모든 게임은 반드시 끝이 있다. 게임을 무사히 끝내면 다음 단계의 게임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게임에 도전할 수 있다. 스타트업 게임의 시작은 창업이고, 끝은 엑시트다. 게임을 시작한 모든 스타트업은 엑시트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엑시트 후를 계획하지 않은 전력 질주의 끝은 결과가 어떻든 안트러프러너 자신에게 긍정적이지 않다. 게임에서 여러 번 실패할 수 있으나, 정작 고통의 크기는 실패의 횟수보다 어떤 실패인가에 좌우된다. 어렵게 성공할 수 있으나, 어떤 성공인가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목표 달성 이후 방향을 잃은 안트러프러너, 특히 성취한 부의 규모가 클수록 안트러프러너 개인의 삶에 미치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비즈니스 여정은 험난하다. 특히 맨땅에서 사투를 벌여야 하는 스타트업 초기는 하루하루가 생존을 위한 투쟁의 시간이다. 엑시트는 고사하고, 엑시트 후를 고민할 여유가 거의 없다. 실제로 이 단계에서 많은 스타트업이 생을 마감한다. 살아남아 성장 단계로 진입해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안트러프러너들은 현재에 더 강하게 매몰되는 ‘활동의 함정(activity trap)’에 빠지기 쉽다. 눈앞에 산적한 문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 즉 최종 목표 엑시트는 급하지 않은 일로 치부되고 뒤로 미뤄진다. 그 결과 방향을 잃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스타트업 게임의 마지막 단계인 엑시트를 창업 초기부터 준비해야 하는 까닭은 안트러프러너 자신과 기업에 유리한 기회를 잡기 위해서다. 준비과정이 있어야 좋은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작 엑시트를 해야 할 때 선택지가 없어 떠밀리듯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결정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많은 스타트업이 상장을 꿈꾸지만, 실제 게임에서 상장을 통한 엑시트는 극히 미미하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좋은’ 엑시트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시기의 문제일 뿐 모든 안트러프러너는 언젠가 자신이 일군 사업을 떠난다. 스타트업은 그 시점이 생각보다 더 빨리 다가온다. 엑시트 준비가 빠를수록 스타트업의 생존 가능성이 커지고, 강한 회사로 성장할 가능성도 훨씬 커진다. 비즈니스 플랜이 엑시트라는 결승선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스스로에게 되묻는 '엑시트 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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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는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경영하고, 오늘이라도 당장 매각이 가능하도록 준비하라는 비즈니스 격언이 있다. 무슨 이야기인가. 가령 내가 평생 살 집을 짓는다고 하자. 작은 자재 하나도 허투루 고르지 않는다. 집을 팔 계획이 없어도 틈틈이 페인트칠하고, 인테리어를 바꾼다. 이런 노력으로 집의 가치가 꾸준히 유지되고 높은 가격으로 집을 팔 수 있다. 기업도 이와 같다. 당장 팔 수 있을 정도로 기업을 유지한다면 언제라도 매각 등 엑시트 기회가 왔을 때 최상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기업가치를 꾸준히 유지하기 위한 경영전략이 바로 ‘엑시트 플랜’이다.

좋은 플랜이 더 나은 엑시트를 가능하게 한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가장 먼저 안트러프러너의 자기인식이 필요하다. 스스로 ‘비즈니스의 목적’과 ‘궁극적 삶의 목표’ 등을 질문함으로써 정체성을 인식해야 한다. 엑시트는 단지 테이블 위에 돈을 놓고 거래하는 행위가 아니다.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직원, 거래처와 거래처 직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다. 직원과 투자자에 대한 책임감이 매우 중요하다. 엑시트를 준비하는 과정은 곧 자아 성찰의 과정이고, 이런 성찰의 시간이 좋은 엑시트 플랜의 토대가 되어 준다.

사실 엑시트는 스타트업 혼자 온전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다. 매각(M&A)은 매수 기업이 필요하다.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상장은 기업공개(IPO)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M&A든 상장이든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기업가치로 엑시트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매각과 상장, 혹은 승계 등 엑시트의 방식은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일찌감치 준비된 엑시트 플랜이 있다면 말이다. 특히 M&A를 통한 조기 엑시트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성공적 M&A는 운이 좋아 ‘일어나는’ 엑시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드는’ 엑시트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엑시트는 선택할 수 있는 이벤트가 아니라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안트러프러너라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러나 현장의 많은 안트러프러너가 엑시트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안트러프러너로서 엑시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음 질문에 답을 해보자. 먼저 자신에 대한 질문이다. △왜 스타트업을 하는가 △스타트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이 왜 필요한가.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가 △엑시트 후, 무엇을 할 것인가를 따져야 한다. 비즈니스에 대한 질문도 있다. △우리 회사를 사려는 인수자가 있을까? △있다면, 왜 우리 회사를 사려고 할까? △우리 회사의 가치는 얼마일까? △더 높은 가치를 평가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등이다.

이 간단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면, 안트러프러너로서 엑시트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며, 엑시트에 대한 준비도 전혀 되어있지 않은 상태다. 엑시트 플랜은 막연하게 매출 규모나 희망하는 기업가치를 기준으로 대략의 타이밍을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엔드 게임' 잘 진행해야 다음 산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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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트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과정으로 진행된다.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중에 창업에 관한 정보는 넘쳐날 만큼 많지만, 상대적으로 엑시트에 관한 정보는 매우 부실하다. 눈을 현혹시키는 숫자와 화려한 수식어를 제외하고 나면 정작 필요한 정보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엑시트 플랜을 준비하려면, 엑시트의 유형과 타이밍, 과정 등을 알아야 하고, 무엇보다 엑시트의 파트너인 투자자에 대한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양한 투자자들은 전혀 다른 의도의 엑시트를 추진한다. 어떤 유형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았는가에 따라 엑시트의 방향이 달라진다. 투자자의 눈으로 비즈니스를 보고, 투자자의 관점으로 엑시트 플랜을 고민해야 한다.

스타트업 게임을 성공적으로 완결하려면, 좋은 전략이 필요하다. 좋은 전략은 충분한 학습을 전제로 한다. ‘스타트업 생태계와 조기 엑시트의 중요성’, ‘비즈니스모델과 엑시트 전략’, ‘벤처캐피털의 속성’, ‘벨류에이션’ 등 엑시트를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을 반드시 이해하고 익혀야 한다. 안트러프러너 및 예비 창업가들이 엑시트 플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각자에게 맞는 엑시트와 그 이후의 모습을 고민하길 바란다.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략을 수립하고, 실제 경영에 적용함으로써 엑시트 성공 가능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엑시트는 안트러프러너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모두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매각을 통한 엑시트는 안트러프러너가 회사를 포기하는 선택이 아니다. 상장이 무조건 더 좋은 엑시트인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 생태계의 법칙은 오직 하나다. 안트러프러너와 스타트업, 투자자 모두 게임을 빨리 완결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게임에 참여한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엑시트의 기회는 빠르게 줄어든다.

에베레스트 정복을 꿈꾸는 산악인의 목표는 당연히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정상을 정복하면 등반은 일단 성공이다. 그러나 최정상에 깃발을 꽂아도 등반은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무사히 산 아래로 내려와야만 한다.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산 중에서 가장 어려운 산은 ‘하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모두가 정상정복에 환호하지만, 실제로 등반은 정상정복 이후가 더 중요하고, 어렵다는 의미다. 따라서 노련한 산악인일수록 치밀하게 계산된 하산계획을 준비한다. 정상정복은 등반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만, 무사 귀환하지 못하면 산악인은 영원히 다음 산에 오를 수 없다.

비즈니스도 이와 같다. 등반의 성공이 정상정복으로 결정되듯, 스타트업의 성공 여부는 엑시트로 결정된다. 엑시트란 안트러프러너 자신을 포함한 투자자들이 회사를 키우는데 투자한 자금을 성공적으로 회수하는 행위를 말한다. 성공적인 엑시트는 주로 두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M&A를 통해 경제적 성공을 이루고 게임을 끝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상장(IPO)을 해서 투자자들은 자금을 회수하고, 안트러프러너는 경영자로서 더 큰 성장을 해 나가는 것이다. 매각이든, 상장이든 엑시트에 성공하지 못하면 좀비가 되거나 파산 혹은 청산된다.

비즈니스모델을 성공적으로 키운 안트러프러너는 높은 기업가치로 충분한 보상을 받고, 임직원을 비롯한 거래처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도 합당한 보상을 받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 과정을 통해 안트러프러너는 성취감으로 충만해지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러나 나쁜 엑시트는 이와 반대다. 안트러프러너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지 않거나, 함께 고생한 동료들이 실직하게 된다. 안트러프러너 혼자 엑시트에 대한 모든 공치사를 하고 함께 한 주변인들에게는 어떤 보상도 없다. 축하는커녕 손가락질을 받으며 야반도주하듯 떠난다. 공들여 키운 기업이 결국 파괴되기도 한다. 다음 목표로 나아가지 못하고 무희망의 상태에서 허우적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안트러프러너는 정체성을 잃고 과도한 상실감으로 고통받는다. 실패한 엑시트다.

행복한 결말은 비즈니스 초기부터 미리 고민하고 전략을 준비했을 때 이룰 확률이 높다. 세계적인 경영 ‘구루(guru)’들이 이구동성으로 ‘사업의 성공은 끝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까닭은 ‘최종 목표(end game)’가 명확해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경영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트러프러너와 창업을 꿈꾸는 모든 이들이여, 오늘 당장 엑시트를 공부하자. 그리고 계획을 세우자. 미지의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 안트러프러너들의 용기 있는 비행의 아름다운 성공을 기원한다.
유효상 유니콘 경영경제연구원 원장

△차의과대 경영대학원장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교수
△숙명여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기술지주회사 대표
△인터벤처 대표
△일진창투 대표
△동양메이저 기획실
△삼성물산 그룹기술사업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