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 후폭풍…"멀쩡한 빌라도 안나가" 전세 거래 '반토막'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거래 3841건
1년 전인 2021년 12월(6779건)의 56.7% 수준
서울 강서구 등 곳곳에 미분양과 공실 발생
"얼마전부터 동네에서 이삿짐 트럭 보기가 힘들 정도에요. 경기도 안 좋은데 빌라 '전세 사기'로 떠들석해진 뒤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16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K공인 대표는 "불경기로 빌라(다세대·연립주택) 매매도 줄었는데 전·월세까지 끊겨 매달 적자를 보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집값이 전세금보다 낮아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빌라 '깡통전세'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전세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하고 있다.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임차인과 분쟁에 휩싸이고 있다. 지역 공인중개와 빌라 건축·분양 업체는 일감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토막난 빌라 전세 거래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다세대·연립주택 전세 임대차 건 수는 3841건으로, 1년 전인 2021년 12월(6779건)의 56.7% 수준으로 줄었다. 지난달은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 상반기 월간 6000~7000건 수준이었던 빌라 전세 건 수는 작년 10월과 11월 5909건, 4882건으로 줄어드는 등 감소세가 뚜렸하다. 전·월세 가운데 전세 비중 역시 지난달 54.96%로, 전년 같은달(61.14%)에 비해 6%포인트가량 낮아졌다. 전세사기 사건이 집중된 인천 역시 전세 비율이 2021년 12월 71%에서 작년 12월 58%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곡동 W공인 관계자는 "2억4000만원에 내놨던 투룸 빌라 전세금을 1억8000만원까지 내렸는데도 집이 안 나간다"며 "임차인이 전세금을 떼일까 봐 보증금을 낮춘 반전세 계약만 찾는다"고 전했다.



몇 달 새 빌라 전세 수요가 급감한 직접적 원인은 이른바 '빌라왕' 사건 등 신축 빌라를 매개로 벌어진 깡통전세 사기 사건이 부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구 등은 전세를 찾는 수요가 더 줄었다. 강서구 K공인 대표는 "외지에서 몰려온 편법 마케팅 조직이 활개쳤다"며 "일부 범죄자 때문에 신혼부부와 사회초년생이 피해를 봤고 지역 부동산업계도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상당수 빌라 집값이 이전 임차인의 전세금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떨어졌다는 점도 수요가 줄어든 이유로 지목된다. 강서구 우장초교 인근 한 중개업소에 최근 나온 전세금 1억4800만원인 전용 43㎡ 빌라는 1년 전인 동일 평형이 1억9500만원에 손바뀜해 전세금이 높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2021년 3월 1억3300만원에 매매됐던 평형이라는 점을 알고 세입자가 발을 돌린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의 지적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아파트는 빅데이터를 이용한 '역전세 분석’도 가능하지만 연립·다세대주택은 형태가 비정형적이라 분석을 하기 어렵다"며 "개인이 개별 건물의 실거래가가 있으면 참고하고 거래가 없다면 주변 시세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택가 곳곳에 미분양·공실 빌라

깡통전세 문제로 빌라 건설·분양 업계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하철 2·5호선 까치산역 일대에는 짓다만 빌라 공사 현장과 할인 분양 현수막이 나붙은 건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화곡터널 인근에 지난해 여름 신축된 한 다세대 주택은 미분양 물량이 많은 탓에 4억8000만원이었던 전용 66㎡ 분양가를 4억2000만원에 할인분양하고 있다. 분양 관계자는 "찾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문제로 불거진 전세 임대는 할 수 없다"며 "2020~2021년 높은 전셋값으로 분양이 잘 안 되다보니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문제 등으로 중단되는 현장도 많다"고 했다.

국토부 건축행정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화곡동에서 신축 허가를 받은 공동주택 69개 단지 가운데 13곳이 착공조차 못 했고, 4개 단지는 상반기에 착공했음에도 아직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 소규모 빌라는 보통 6개월 정도면 공사를 끝낼 수 있다. 현장 주변 A공인 관계자는 "전세 사기가 부각되다 보니 멀쩡하게 지어진 빌라도 보러 오는 사람이 줄었다"며 "비싸게 땅을 산 데다 작년에 건축비와 금융비용이 급등한 탓에 손해를 보는 업체도 많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