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노조 때문에 전기차 신공장에 '잉여인력' 뽑는 퇴행적 현실

기아가 경기 화성에 짓기로 한 전기차 공장이 노사 진통 끝에 약 1년 만에 타결됐다. 기아는 내년부터 픽업트럭을, 2025년 7월부터 ‘맞춤형 전기차’인 목적기반차량(PBV)을 각각 양산할 계획이다. 기아가 국내에 25년 만에 짓는 공장으로 주목받았지만, 연산 10만 대 규모로 건립한 뒤 상황을 봐가며 증설하려는 회사 측에 맞서 노조가 20만 대짜리로 지으라고 요구해 관철한 것이다.

뒤늦게나마 협상이 타결된 것은 다행이지만, 노조 주장을 대부분 수용한 합의 내용을 보면 이 공장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연 10만 대 규모로 일단 착공하기로 했지만, ‘향후 중장기 판매 상황 및 제조 경쟁력을 판단해 2단계로 20만 대 규모로 구축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했다. 특히 회사 측이 신공장이 들어설 부지에 있는 기존 생산라인 인력(578명)을 37%가량 줄여야 한다고 판단해 놓고도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759명으로 늘리기로 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 내연기관차보다 공정이 단순하고 부품도 적게 들어가 인력이 40%가량 덜 필요한 전기차 공장에 인력을 확충하기로 했으니 생산성이 높아지겠나.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만큼 추가 전기차 공장 설립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전기차 전환에 나선 미국 포드는 지난해 3000명의 직원을 정리해고했다.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직원이 너무 많고 전기차에 필요한 전문지식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일찌감치 전기차 시대를 대비한 GM(제너럴모터스)은 2018년부터 북미 공장 5곳을 폐쇄하고 1만5000여 명을 감원했다. 일본 혼다는 2021년 내연기관차 사업부에서 조기 퇴직을 실시해 2000여 명을 내보냈다.

이런 와중에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구조조정은커녕 인력 재배치나 생산 물량 조정도 노조 동의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대차 미국 조지아 전기차 공장은 부지 확정부터 착공까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한국에선 번번이 노조 허가를 받느라 하세월이다.

자국산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한국에 공장을 지을 이유가 더욱 없어진 가운데 노조까지 몽니를 부리면 어쩌자는 건가. 제 밥통 걷어차는 줄도 모른 채 눈앞의 변화를 외면하는 기득권 노조나 맥없이 끌려다니는 회사를 보면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