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엑소더스]② '대법원장 눈치보기' 없애려다 줄사표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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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탁 인사' 고법 부장판사 폐해 없애려 2011년 고법 판사 신설
김명수 사법부가 없앤 고법 부장판사 대신할 고법 판사 떠나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중 퇴직이 가속된 고등법원 판사는 과거의 발탁 인사였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신설된 법원 인사개혁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결과적으로 이들이 줄사표를 내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고법 부장판사 '승진', 사법부 관료화 원인
대법원장의 인사권과 법관의 독립성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여겨진다.
판사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 법관 독립이 무너지는 탓이다. 이른바 '사법부의 관료화'의 폐단이다.
발탁식이던 고법 부장판사 인사는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10여년 전까지 법관 인사는 철저히 계단식이었다.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지방법원 단독재판부 판사→고등법원 배석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장 순으로 한칸 한칸 올라갔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방식이지만 법원의 인사 명령은 공식적으론 승진이 아닌 '전보'다.
헌법이 정하는 법관의 종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관 세 종류뿐이어서 인사권자가 임의로 차등을 둘 수 없어서다. 법전과 실제의 불일치 속에 고법 부장판사는 사실상 승진 인사였다.
다른 단계는 경력이 쌓이면 자연히 이동하는 것과 달리 고법 부장판사만큼은 능력을 인정받은 소수만 대법원장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였다.
관용차와 운전기사가 제공돼 위상도 확연히 달랐다.
고법 부장판사는 매년 사법연수원 세 기수만 될 수 있었다.
즉 기수마다 세 번의 '승진 기회'가 돌아간다.
올해 21∼23기가 대상이었다면 내년에는 22∼24기 차례다.
21기 판사는 올해가 마지막 승진 기회라는 뜻이다.
대다수가 학창 시절부터 엘리트의 길만 걸어온 판사에게 탈락의 박탈감은 큰 충격이라고 한다.
매년 인사가 발표되면 고법 부장판사가 되지 못한 판사가 법원을 떠나는 일이 예사였다.
고법 부장판사를 앞둔 연차의 판사는 '고3 부장'이라는 별명도 붙는다.
좋은 인사 평가를 받으려 격무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법 부장판사 인사는 여러 폐단을 낳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것은 판사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봐 가며 판결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 법조인사 이원화 시도…'10조 판사' 등장
이 같은 폐단이 지적되자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0년 대법원은 결국 개선안을 마련했고 이듬해 정기인사에 도입했다.
지법 부장판사→고법 부장판사 '승진'을 단계적으로 없애는 대신 법관인사규칙 제10조를 개정해 지법 부장판사 수준의 경력을 갖춘 법관을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법원에 이른바 '10조 판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법 부장판사와 고법 판사를 구분하는 '법관인사 이원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 개혁안이었다.
도입 첫해인 2011년 2월 정기인사에선 지법 부장판사 초임 기수인 연수원 25기부터 23기까지 세 기수에 고법 부장판사 자격을 줬고, 매년 한 기수씩 낮춰가면서 3개 기수씩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전면적인 제도 개편인 만큼 유예 기간을 뒀다.
23기와 24기는 한두 차례밖에 10조 판사로 지원할 기회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 이들은 시기가 돌아오면 이전처럼 고법 부장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 고법 부장판사 없애자 '줄사표'
이후 양승태 사법부는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하는 결정을 유보했다.
실무상 보직 자체를 없애기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첫인사인 2018년이 고법 부장판사 폐지가 본격화했다.
순서상 23∼25기가 고법 부장판사가 될 기회를 얻어야 하는데, 25기는 23∼24기와 달리 10조 판사(고법 판사)가 될 기회를 3회 모두 얻은 첫 기수였기 때문이다.
만약 25기의 10조 판사 또는 지법 부장판사를 고법 부장판사로 임명하면 이듬해부터 26기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만큼 고법 부장판사 제도의 존폐가 갈림길에 섰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2018년 인사에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2∼24기를 고법 부장판사에 임명했다.
2021년 정기 인사부터는 고법 부장판사가 받던 관용차와 운전기사 등 혜택도 없앴다.
올해부터는 지법원장의 자격을 아예 '지법 부장판사'로 한정해 고법 부장판사나 10조 판사는 이 자리에 갈 수 없게 했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인사 방향은 10조 판사 인사가 안착해 이들이 고법 부장판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전제로 했지만, 현실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0조 판사가 최근 법원의 '퇴직 러시' 중심이 된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10조 판사는 작년 인사에서 역대 최다인 13명이 옷을 벗었고, 올해도 서울고법에서만 이미 11명이 사표를 내 작년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 내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역점을 두고 추진한 고법 부장판사 폐지 등 인사 체계의 변화가 영향을 줬다는 시각이 많다. 수직적인 인사 구조를 타파하려는 목적이었지만 10조 판사에게는 '고법 부장판사→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사다리'가 사라져 법원에 남아있을 중요한 이유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김명수 사법부가 없앤 고법 부장판사 대신할 고법 판사 떠나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중 퇴직이 가속된 고등법원 판사는 과거의 발탁 인사였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의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신설된 법원 인사개혁을 대표하는 직책이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결과적으로 이들이 줄사표를 내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제도를 수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 고법 부장판사 '승진', 사법부 관료화 원인
대법원장의 인사권과 법관의 독립성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여겨진다.
판사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 법관 독립이 무너지는 탓이다. 이른바 '사법부의 관료화'의 폐단이다.
발탁식이던 고법 부장판사 인사는 사법부 관료화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10여년 전까지 법관 인사는 철저히 계단식이었다. 지방법원 합의부 배석판사→지방법원 단독재판부 판사→고등법원 배석판사→지방법원 부장판사→고등법원 부장판사→법원장 순으로 한칸 한칸 올라갔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는' 방식이지만 법원의 인사 명령은 공식적으론 승진이 아닌 '전보'다.
헌법이 정하는 법관의 종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관 세 종류뿐이어서 인사권자가 임의로 차등을 둘 수 없어서다. 법전과 실제의 불일치 속에 고법 부장판사는 사실상 승진 인사였다.
다른 단계는 경력이 쌓이면 자연히 이동하는 것과 달리 고법 부장판사만큼은 능력을 인정받은 소수만 대법원장에 의해 임명되는 자리였다.
관용차와 운전기사가 제공돼 위상도 확연히 달랐다.
고법 부장판사는 매년 사법연수원 세 기수만 될 수 있었다.
즉 기수마다 세 번의 '승진 기회'가 돌아간다.
올해 21∼23기가 대상이었다면 내년에는 22∼24기 차례다.
21기 판사는 올해가 마지막 승진 기회라는 뜻이다.
대다수가 학창 시절부터 엘리트의 길만 걸어온 판사에게 탈락의 박탈감은 큰 충격이라고 한다.
매년 인사가 발표되면 고법 부장판사가 되지 못한 판사가 법원을 떠나는 일이 예사였다.
고법 부장판사를 앞둔 연차의 판사는 '고3 부장'이라는 별명도 붙는다.
좋은 인사 평가를 받으려 격무를 자처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고법 부장판사 인사는 여러 폐단을 낳았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문제로 꼽힌 것은 판사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눈치를 봐 가며 판결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 법조인사 이원화 시도…'10조 판사' 등장
이 같은 폐단이 지적되자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0년 대법원은 결국 개선안을 마련했고 이듬해 정기인사에 도입했다.
지법 부장판사→고법 부장판사 '승진'을 단계적으로 없애는 대신 법관인사규칙 제10조를 개정해 지법 부장판사 수준의 경력을 갖춘 법관을 '고등법원 판사'로 임명했다.
법원에 이른바 '10조 판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법 부장판사와 고법 판사를 구분하는 '법관인사 이원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인사 개혁안이었다.
도입 첫해인 2011년 2월 정기인사에선 지법 부장판사 초임 기수인 연수원 25기부터 23기까지 세 기수에 고법 부장판사 자격을 줬고, 매년 한 기수씩 낮춰가면서 3개 기수씩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전면적인 제도 개편인 만큼 유예 기간을 뒀다.
23기와 24기는 한두 차례밖에 10조 판사로 지원할 기회가 없었던 점을 고려해 이들은 시기가 돌아오면 이전처럼 고법 부장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 고법 부장판사 없애자 '줄사표'
이후 양승태 사법부는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폐지하는 결정을 유보했다.
실무상 보직 자체를 없애기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첫인사인 2018년이 고법 부장판사 폐지가 본격화했다.
순서상 23∼25기가 고법 부장판사가 될 기회를 얻어야 하는데, 25기는 23∼24기와 달리 10조 판사(고법 판사)가 될 기회를 3회 모두 얻은 첫 기수였기 때문이다.
만약 25기의 10조 판사 또는 지법 부장판사를 고법 부장판사로 임명하면 이듬해부터 26기에도 똑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만큼 고법 부장판사 제도의 존폐가 갈림길에 섰다.
김 대법원장은 고법 부장판사를 임명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2018년 인사에선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22∼24기를 고법 부장판사에 임명했다.
2021년 정기 인사부터는 고법 부장판사가 받던 관용차와 운전기사 등 혜택도 없앴다.
올해부터는 지법원장의 자격을 아예 '지법 부장판사'로 한정해 고법 부장판사나 10조 판사는 이 자리에 갈 수 없게 했다.
김 대법원장의 이 같은 인사 방향은 10조 판사 인사가 안착해 이들이 고법 부장판사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을 전제로 했지만, 현실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10조 판사가 최근 법원의 '퇴직 러시' 중심이 된 것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10조 판사는 작년 인사에서 역대 최다인 13명이 옷을 벗었고, 올해도 서울고법에서만 이미 11명이 사표를 내 작년의 기록을 깰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 내에서는 김 대법원장이 취임 후 역점을 두고 추진한 고법 부장판사 폐지 등 인사 체계의 변화가 영향을 줬다는 시각이 많다. 수직적인 인사 구조를 타파하려는 목적이었지만 10조 판사에게는 '고법 부장판사→법원장'으로 이어지는 '승진 사다리'가 사라져 법원에 남아있을 중요한 이유 하나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