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슈퍼 AI경쟁, 진짜 전쟁의 서막

이관우 사회부장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는 미래의 기점을 ‘싱귤래리티(Singularity:기술적 특이점)’라 부른다. 영국 감독 앨릭스 갈랜드의 영화 ‘엑스 마키나’는 공상과학 속 미래를 현실로 소환한다. AI가 과학자를 유혹한 뒤 그를 활용해 주인을 제압하는 클라이맥스에서, 기하급수로 진화하는 기술문명에 급소를 내준 인간 탐욕이 그대로 드러난다. 진짜와 가짜, 허구와 팩트가 뒤섞여 경계가 허물어진 지점에서 관객의 공포가 증폭된다.

이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점증하기 시작한 사건이 미국 오픈AI가 곧 공개할 GPT-4의 등장이다. 인간 뇌신경전달 체계를 닮은 매개변수가 최소 1조 개가 넘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1750억 개 수준인 앞선 버전 GPT-3만으로도 이미 경이롭다는 평이 넘친다. 이 기반으로 만든 챗GPT는 수만 명이 동시에 던지는 질문을 ‘AI스럽게’가 아니라 ‘인간스럽게’ 답한다. 겸손함이 묻어난다는 말도 나온다. 이를테면 “당신이랑 구글검색이랑 누가 더 뛰어난가?” 유의 질문을 하면 “구글을 완전히 대체할 것 같지는 않다”고 몸을 낮춘다.

영화 같은 충격적 기술 진화

챗GPT의 수백 배 이상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게 GPT-4다. 과학자들 사이에선 “인간과 AI를 구분 짓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더라”라는 미확인 소문이 떠돈다. 구글의 한 과학자는 “인공지능이 드디어 자아(自我)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보고서를 써낸 뒤 사직했다는 이야기도 퍼졌다. 영화 엑스 마키나가 새삼 회자되는 배경이다.

세간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AI의 덕을 쉽게 보려는 이들이 먼저 열광적으로 좌판을 벌였다. AI 테마, 로봇 테마 등이 증시를 들쑤신 것이다. 대화형 AI를 개발한다는 이유만으로 상한가가 나온 게 최근의 일이다.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중소 AI코딩 학원들도 난립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스타트업도 AI 전략을 빼면 말발이 서지 않는 게 요즘이다. 공공부문도 발빠르게 움직였다. 과학기술, 지방 행정 등 개혁 정책의 말끝마다 ‘AI 활용전략’이 빠지지 않는다. 새 정부 역시 교육개혁 구상에 AI를 밀어넣었다. 공공 데이터베이스가 이런 정책을 받쳐주기엔 너무도 허약하다는 지적이 여전한데도 그렇다.

기술 축적 가속페달 밟아야

정작 전문가들은 차분하다. AI 분야 세계적 석학 앤드루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채팅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범용 AI가 출현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낙관을 경계했다. 텍스트 정보를 기반으로 자연스러운 문장 만들기에 최적화됐을 뿐, 산업적 대중화로 확장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비용도 문제다. GPT-3만 해도 하루종일 돌리려면 500만~600만원이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거품을 걷어내고 기술개발을 선택한 이들은 기업이다. KT, 네이버 등이 세계적 수준의 하이퍼스케일 AI에 이미 도전장을 던졌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승자독식 슈퍼AI 경쟁을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것이다.

싱귤래리티를 알린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저서에서 “2045년, 그 때가 온다”고 했다. 예언이 현실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건 축적과 속도다. 진짜 전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