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준호의 딜 막전막후] K콘텐츠 油田에 베팅한 오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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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호 증권부 기자“당장 사우디행 비행기를 알아봐야 하는 건 아닌지 정말 초조했죠.”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PIF)와 싱가포르 국부펀드(GIC)로부터 1조1540억원에 달하는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한 관계자에게 투자 유치 과정에서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 언제냐고 묻자 지난해 11월을 꼽았다. 배재현 부사장이 이끄는 카카오 투자전략실은 이즈음 GIC와 투자 유치 논의를 먼저 끝낸 뒤 PIF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PIF가 내부 투자심의위원회를 열어 답변을 주기로 한 지 며칠이 지나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이는 다행히 월드컵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투심위 전날 열린 경기에서 사우디가 아르헨티나를 꺾자 온 국민이 축제를 벌였고, PIF 의사결정자들도 ‘자체 휴가’에 들어갔던 것. 카카오 관계자들은 사우디가 조별 리그를 통과해 공백이 길어졌다면 거래 완주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활 걸었던 투자 유치
카카오팀이 이렇게 초조할 수밖에 없었던 건 카카오엔터가 창사 이후 최대 위기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카카오엔터의 확장엔 거침이 없었다. 상장에만 성공하면 기업가치 20조원을 훌쩍 넘길 수 있다는 꿈을 앞세워 유망한 기획사·제작사를 쓸어 담았다. 보유 현금이 바닥을 보였지만 언제든 외부에서 투자 유치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하지만 금리 상승으로 전 세계 유동성 파티가 끝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초 1조원 규모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추진한 KKR,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자들이 막판에 투심위 부결을 이유로 발을 뺐다.감춰져 있었던 문제들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2021년 인수한 미국 웹소설 플랫폼 래디시와 타파스는 문화 차이로 인수후통합(PMI)에 난관을 겪었다. 잇따라 인수한 47곳의 제작·기획사가 카카오플랫폼과 어떤 시너지를 낼지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때마침 카카오의 자회사 쪼개기 상장 논란이 불거지면서 카카오엔터도 IPO를 무기한 연기해야 했다.
"투자금 글로벌 진출에 사용"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달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단기차입금 등이 9000억원에 달하지만 사용 가능한 자금은 4500억원 내외에 불과하다”고 경고했다.동력이 꺼져가던 카카오엔터에 마지막 기회가 찾아온 건 지난해 6월이었다. 2016년 앵커 프라이빗에쿼티(PE)의 카카오엔터 투자에 펀드출자자(LP)로 참여한 GIC가 직접 투자를 제안하면서 협상이 시작됐다. GIC가 PIF를 공동 투자자로 초청하며 판이 커졌다.PIF와 GIC는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각각 6200억달러(768조원), 6900억달러(770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대표 국부펀드다. 이들은 카카오엔터가 보유한 콘텐츠 본연의 역량에 집중했다. 웹툰·웹소설(스토리)에서 드라마 제작(미디어), 연예기획 및 음원사업(뮤직)까지 하나의 플랫폼에 두고 콘텐츠를 만드는 기업은 세계에서 카카오엔터가 유일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쟁력 있는 한국 콘텐츠가 뿜어나올 수 있는 ‘유전’을 발굴하는 것처럼 장기적인 시각에서 투자하기로 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GIC와 PIF 모두 재무적투자자(FI)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다”며 “다만 투자금을 글로벌 진출을 위해 써달라고 당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카카오엔터는 지난 12일 유상증자에 대해 공시하면서 투자금의 절반은 운영자금, 나머지 절반은 기업 인수합병(M&A)에 쓰겠다고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