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 "해임은 윤 대통령 본의 아닐 것"…김대기 "대통령이 진상 파악해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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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SNS에 글 올리자17일 오후 3시30분께 나경원 전 의원은 동대구역의 한 호떡집에 있었다. 대구 동화사를 찾아 기자들에게 “(당대표 출마에 대한) 마음의 결심은 거의 섰다”고 밝히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허기를 잠시 달래는 찰나, 대통령실이 나 전 의원에게 공개 경고장을 날렸다. 이를 신호탄으로 친윤계 의원들의 비판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나 전 의원을 공개 비판한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하루에만 49명에 이르렀다.
김대기 실장, 이례적으로 반박
"尹 어찌 생각할지 본인이 알 것"
친윤 "尹 허수아비로 보나" 비판
초선 의원 48명, 공식 사과 촉구
사면초가 羅 "드릴 말씀 없어"
나경원, “전달 과정 왜곡 있었다”
이날 아침 나 전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도화선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대사직에서 해임한 것에 대해 나 전 의원은 “전달 과정의 왜곡도 있었다”, “해임이 대통령 본의가 아니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출마를 집중 견제하고 있는 친윤 인사들이 대통령의 뜻을 왜곡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이어 나 전 의원은 “내년 총선 승리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 국민과 대통령을 이간하는 당대표가 아니라 국민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일부 참모의 왜곡된 보고를 시정하는 당대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스스로 친윤임을 강조하며 ‘윤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의지를 당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슷한 시각 자신의 인스타그램에는 전날 오세훈 서울시장과 찍은 사진을 게재하며 “죽었다 깨도 반윤은 안 돼요!”라는 글을 적기도 했다.
발끈한 대통령실
이에 대통령실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나타냈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언론 공지를 통해 “나 전 의원 해임은 대통령의 정확한 진상 파악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다. 김 비서실장은 “대통령께서는 누구보다 여러 국정 현안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신다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국익을 위해 분초를 아껴가며 경제외교 활동을 하고 계시는 대통령께서 나 전 의원의 그간 처신을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본인이 잘 알 것”이라고 덧붙였다.윤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를 국빈 방문 중인 가운데 비서실장이 출입기자단에 본인 명의 입장문을 내고 여당 중진 정치인을 정면 비판한 것은 이례적이다. 국정 운영이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등에 휘둘리는 듯한 메시지를 나 전 의원이 낸 데 대해 윤 대통령과 참모진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곧 여당 내에서 나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이 줄을 이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방송에서 “나 전 의원의 언행이 매우 부적절해 대통령의 해임 결정도 나온 것 아니겠냐”며 “대통령을 자꾸 정치 이슈에 끌어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나 전 의원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온 김기현 의원은 “대통령의 해임 결정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왜곡·해석한다면 온당한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박수영 의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친윤도 나경원에 파상공세
이는 초선 의원 48명의 공동 비판 성명으로 이어졌다. 배현진, 강민국 의원 등은 성명에서 “자신의 출마 명분을 위해 대통령 뜻을 왜곡하고, 동료들을 간신으로 매도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나 전 의원은 지금 누구와 어디에 서 있느냐”며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처럼 발빠르게 비판 성명이 나온 배경에는 친윤계 모임인 ‘국민공감’ 소속 의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후문이다.정치권에서는 “실언을 빌미로 나 전 의원의 당대표 출마 저지 굳히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든 것이 나 전 의원이 서울행 열차 안에 있던 두 시간 사이에 벌어졌다. 나 전 의원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서울역에서 기자들과 만나 “드릴 말씀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고재연/양길성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