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추억의 종로서적 앞

“대학 시절 종로서적 비좁은 입구에 서서 사람들 틈에 끼여 친구를 기다렸다. 삐삐도 없던 시절이니 늦으면 늦는 대로 연락할 길 없이 무작정 기다렸다. 바람을 맞았다 싶으면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서점으로 올라갔다. 계산대에서 정성스럽게 표지를 싸준 책을 들고나올 때면 기분은 이미 가벼워져 있었다.”(수필 ‘종로서적에서’/이미영)

1970, 1980년대 고등학교, 대학을 다닌 중장년층이면 한 번쯤 있을 기억이다. 당시 저녁 시간이 되면 서울 종로2가 옛 종로서적 입구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여기저기서 친구, 애인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연신 들려오고,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이들을 얼싸안거나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는 이들의 모습이 선하다.삐삐도, 휴대폰도 없던 때라 지역마다 종로서적 같은 만남의 광장이 필요했다. 신촌 홍익문고, 홍대 리치몬드제과점, 강남역 뉴욕제과와 타워레코드 등이 서울 번화가의 약속 명소들이었다. 부산은 서면엔 롯데백화점 지하 분수대와 쥬디스태화, 남포동엔 남포문고 옛 자리가 있다. 대구에선 동성로 한일극장과 대구백화점이 그 역할을 했다. 광주는 충장로 광주우체국 앞을 애용했다. 많은 사람이 흡사 다방처럼 이곳을 이용하면서 우체국다방의 줄임말로 ‘우다방’으로도 불렸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종로서적 조사 연구 보고서’를 펴냈다. 대학교수, 출판인들이 연구자로 참여해 1907년 기독교 서점으로 시작해 2002년 문을 닫은 옛 종로서적의 약 100년간 발자취를 국내 출판문화 발전사적 측면에서 다룬 보고서다. 국내 서점 최초로 작가와의 대화 이벤트와 회원제 도입, 베스트셀러 집계 등 선구자적 역할을 한 서점이다.

그러나 이젠 약속 명소 중 ‘종로’도 없고 ‘서적’도 없다. ‘거리 권력’의 변화 속에서 종로는 서울에서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로 전락했다. ‘문화 권력’의 흐름 속에서 인터넷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의 성쇠는 비교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요즘 젊은이들의 ‘최애’ 만남 장소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디지털 공간이다. “우리 종로서적에서 만나~”라는 사람 내음 풀풀 나는 아날로그 감성이 그리울 때가 있다.

윤성민 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