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확보' CEO 책임범위 모호…기업-檢 치열한 법리다툼 예고
입력
수정
지면A8
중대재해법 1년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법 시행 8개월 후인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사고는 속출했고, 수사도 대대적으로 벌였지만 전문가인 검찰조차 새 법을 기준으로 기소 여부를 판단하기까지 오랜 고민이 필요했던 탓이다. 그랬던 검찰이 최근 3개월여간 10개 기업을 추가로 기소하면서 중대재해 사건 처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다. 법인은 최대 50억원까지 벌금을 내야 한다.
(상) 중대재해 기소 11건 모두
"대표이사 책임"…재판 쟁점은
핵심은 '안전 의무 이행' 여부
안전예산 편성·경영방침 설정 등
檢이 의무위반으로 기소했지만
규정 불명확해 해석 놓고 공방
CSO 뒀는데 대표이사만 기소도
권한·책임 입증 여부 '관심 집중'
○법조문 해석 다툼 가열 조짐
중대재해처벌법 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려면 크게 △안전보건 확보의무 미이행 △사고와의 인과관계 △예견 가능성 △고의성이 동시에 입증돼야 한다. 기업이 법에서 요구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고가 일어났고, 사고 발생 가능성이 예견됐음에도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은 상태를 방치했다는 근거가 필요하다.법조계에선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둘러싸고 가장 첨예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명확하지 않은 규정으로 인해 기업과 검찰이 각자 유리한 대로 해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사업주의 예산 편성·집행 의무를 규정한 내용이 대표적이다. 중대재해법 및 시행령에는 ‘사업주가 재해 예방을 위해 시설, 장비 구비 등에 쓰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만 기재돼 있다. 어떤 식으로 얼마나 편성해야 하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경영책임자가 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 방침을 세워야 한다는 규정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어떤 방식이어야 설정했다고 볼 수 있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이외에도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에게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게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과 예산’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위험 방지 조치’를 요구한 내용 등이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은 각종 정황과 증거를 앞세워 법을 준수했음을 주장하며 수사기관의 유죄 논리를 깨려고 할 것”이라며 “법원 역시 수사·기소 과정보다 더욱 깐깐한 잣대로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첫 기소 시점에도 관심
대기업의 중대재해 재판 사례가 언제 나올지도 산업계의 주요 관심사다. 지난 1년여간 대기업 생산 현장에서도 사고가 쏟아져 수사가 진행됐지만 아직 기소 여부가 결정된 곳은 없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 33건 중에서도 대기업은 현대제철, 쌍용C&E, 삼표산업 등 손에 꼽는다. 중대재해법 도입 전부터 많은 비용을 투입해 안전사고 예방체계를 구축하려고 한 대기업이 적지 않았던 만큼 수사기관 역시 위법 여부를 쉽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중소기업 재판이 꽤 진행된 후에야 기소되는 대기업이 등장할 전망이다.대형 로펌 중대재해 담당변호사는 “대기업들은 직접 법정 다툼을 통해 초기 판례를 만들긴 어려워졌지만, 그동안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안전보건 확보의무 이행 여부를 정기적으로 점검했다면 유죄 판결이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