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꼈다" vs "보편적 기술"…대기업-벤처 간 잇단 '카피캣' 논란 [긱스]

중소벤처기업부, 이례적으로 신속 조치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카피캣(모방품)’ 논란이 또 터졌습니다. 혁신과 참신한 아이디어를 앞세운 스타트업의 서비스나 제품을 대기업이 따라했다는 의혹입니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베끼기'라며 비난합니다. 반면 대기업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아이디어라고 맞섭니다. 양측이 합의하지 않거나 물러서지 않을 경우 법정 다툼까지 이어질 수 있죠. 이번에는 정부가 이례적으로 적극 개입에 나선 것도 눈에 띕니다. 한경 긱스(Geeks)가 최근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 간 카피캣 논란을 자세히 전해드립니다.

투자 제안 뒤 아이디어 탈취?

알고케어 제공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헬스케어가 한 스타트업이 개발 중이던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를 베껴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알고케어는 18일 “투자 및 사업 협력을 제안했던 롯데헬스케어가 우리 사업 아이디어를 그대로 베껴 제품을 개발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 회사는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3'에서 개인 맞춤형 영양제 디스펜서 ‘뉴트리션 엔진’을 선보였다. 올해 3월 제품 출시를 앞두고 홍보에 나선 것이다.

같은 행사에서 롯데헬스케어도 비슷한 영양제 디스펜서 제품인 ‘필키’를 신제품으로 홍보했다. 필키는 롯데의 헬스케어 커머스 플랫폼 '캐즐'(CAZZLE)과 연동된 영양제 디스펜서다. 알고케어는 롯데가 CES에서 전시한 제품이 자사 제품을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알고케어의 뉴트리션 엔진은 영양제를 카트리지 형태로 밀봉해 기기에 넣는 방식이다. 영양제 구성과 섭취 방식, 교체 시기 등을 자동으로 계산해준다. 밀폐된 상태로 보관해 품질 상태도 유지한다. 롯데헬스케어 캐즐도 카트리지 형태의 영양제 디스펜서다.
롯데헬스케어 제품(왼쪽)과 알고케어 제품
정지원 알고케어 대표는 “(롯데 디스펜서가) 제품 외관뿐 아니라 영양제 토출 방식, 카트리지 사용법 등 제품 구조가 우리 제품과 흡사하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개발하고 있던 시제품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메커니즘”이라며 “여러 개의 카트리지를 위에서 아래로 꽂아놓는 구조, 카트리지의 결합 유닛 장치의 구조와 원리, 디스펜서의 컨셉과 디자인, 알록달록한 영양제 조합의 모습까지 모두 우리 제품과 똑같다”고 말했다.

알고케어에 따르면 롯데헬스케어는 2021년 9월 알고케어에 투자를 제안했다. 롯데벤처스가 알고케어에 투자 제의를 하며 IR(기업 설명)을 요청했고, 해당 발표 자리에 롯데헬스케어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회사가 논의를 했지만 사업적으로 뜻이 맞지 않아 투자와 사업 협력 모두 무산됐다. 정 대표는 “IR 당시 제품 제조 기술, 사업 방식, 관련 규제 등에 대해 상세히 물었고 시제품 시연도 했다”고 했다. 알고케어는 영업비밀침해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며 공정거래위원회에도 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롯데헬스케어는 강하게 반발했다.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와 만나기 전인 2021년 8월 롯데지주 산하의 신사업팀을 조직할 때부터 검토한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맞춤형 건강관리 플랫폼을 기반으로 건강기능식품 소분 판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며 "‘개인 맞춤형’이라는 트렌드는 이미 업계를 막론하고 대중화된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디스펜서를 활용한 맞춤형 영양제 판매와 함께 '소분 판매’를 고려하던 중 이는 규제 샌드박스 신청이 필요한 사업이라 우선 해외에서 일반화된 ‘디스펜서’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알고케어 제품과 비슷한 제품이 해외에서 이미 나왔다는 주장이다.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 제품과 비슷한 제품이 이미 나왔다며 네슬레의 '네슬레 웰니스 앰배서더'를 활용한 캡슐 커피 머신 '돌체 구스토'를 예시로 제시했다.
롯데헬스케어는 알고케어의 핵심 기술인 카트리지 방식 차용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롯데헬스케어 측은 "제품 정보를 담은 메모리칩을 카트리지에 삽입하고 영양제의 양이나 원산지, 잔량트래킹, 교체시기 알람, 자동배송, 냉장, 제습, 밀폐 기능 등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롯데헬스케어의 카트리지는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는 RFID 스티커를 케이스 윗면에 부착하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롯데헬스케어는 2021년 알고케어와 투자 논의가 종료된 이후 사업방향에 맞는 자체 디스펜서를 제작하기로 했고 롯데그룹 계열사 가운데 하나인 ‘캐논코리아 주식회사’에 해당 작업을 의뢰했다"고 덧붙였다. 알고케어는 롯데헬스케어의 해명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알고케어 관계자는 "(제품의) 세로 길이만 다르고 구조와 원리가 동일하다. 토출부가 카트리지의 뚜껑으로 결합 1회용으로 사용되는 방식도 동일하며 토출부에 구멍이 뚫려있어 영양제가 한 알씩 토출되는 형태도 같다. 카트리지 토출부 중앙에 모터를 통해 작동되는 것으로 보이며 동일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고케어 제공
카트리지의 유사성과 관련해서는 "롯데헬스케어는 영양제 카트리지 식별을 위해 사용되는 칩의 성격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롯데헬스케어가 사용한 RFID는 메모리칩과 원리적으로 동일하다. 롯데헬스케어의 '필키' 역시 해당 스티커가 영양제의 성분 구분, 용량,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 어떤 영양제 디스펜서에도 일반 영양제 패키지에도 영양제의 성분을 자동으로 식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장매체(RFID, 메모리칩 등)를 사용한 케이스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알고케어 측은 "롯데헬스케어에서 RFID와 메모리칩이 다르다는 주장은 구현하는 통신 방식만 다를 뿐 알고케어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그대로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이례적인 스타트업 신속 지원

알고케어와 롯데헬스케어 간 카피캣 논란이 알려진 18일에 정부는 알고케어 지원에 바로 나섰다고 밝혔다. 이례적으로 빠른 조치였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아이디어 탈취 관련 사건을 인지한 17일에 기술침해 행정조사 전담 공무원과 대중소기업협력재단 소속 전문가(변호사)를 알고케어에 파견해 피해상황을 확인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중기부는 "피해기업이 기술 침해 행정조사와 기술분쟁조정을 신청할 시 신속히 조정이 성립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조정불성립 시 소송비용도 지원할 계획"이라며 "기업요청에 따라 공정위, 특허청 등 소관부처에 신고를 위한 법률 자문도 지원할 예정"이라고 혔다. 윤석열 정부는 기술 탈취에 따른 중소 기업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을 국정과제로 정하여 추진 중이다.

대기업의 스타트업 간 카피캣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KT가 내놓은 인공지능(AI) 음성 합성 서비스 ‘KT AI 보이스 스튜디오’가 AI 스타트업 네오사피엔스의 ‘타입캐스트’를 베꼈다는 의혹이 터졌다. 두 서비스 모두 문자를 감정이 담긴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서비스다. KT는 해당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국내 최초의 감정 더빙’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네오사피엔스는 비슷한 서비스를 3년 전에 내놨다. KT 서비스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까지 타입캐스트와 비슷해 논란이 커졌다. 이에 KT는 일부 의혹은 인정하고 UI를 수정했다.
왼쪽은 생활연구소, 오른쪽은 LG 홈인의 앱. 생활연구소 제공
LG유플러스가 2021년에 출시한 집안일 해결 플랫폼 앱인 'LG 홈인'은 스타트업 생활연구소의 ‘청소연구소' 앱의 UI와 UX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해당 논란의 시작도 알고케어의 경우와 비슷하다. LG유플러스는 2019년 생활연구소에 전략적 투자를 전제로 한 업무협약을 제안했다. 이 과정에서 LG유플러스는 청소연구소의 사업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는 성사되지 않았다. 논란이 커지자 LG유플러스는 앱 일부를 수정했고 작년에 관련 사업을 접다. 그동안 네이버와 카카오도 IT 스타트업의 서비스를 베꼈다는 의혹이 반복해서 터졌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중기부로부터 받은 자료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조사 발표된 중소기업 기술유출 및 탈취 피해금액이 282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침해가 발생하였거나 피해를 인지한 중소기업 피해건수는 5년간 280건에 달했다. 하지만 증거 등 입증자료 부족(75%) 등 상당수가 아무런 조취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NDA 없이는 미팅 무조건 거절해야"

법조계에서는 특허 확보 등으로 보호받을 수 없는 사업 모델과 아이디어 관련 논란은 표절 여부를 가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트업이 관련 사업을 먼저 시작했다고 무조건 보호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최철민 최앤리법률사무소 대표는 “한국에서는 아이디어 자체를 법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며 “그 아이디어를 표현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특허법이나 저작권법으로 보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디어를 침해당했는지 부정경쟁행위방지법 위반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먼저 내놓은 기업의 인지도도 중요한데 스타트업이 이 부분에서는 불리하다”고 덧붙였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보통 외관이나 자료만으로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자세한 내부 구조를 파악해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활용해 자사 제품에 활용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쟁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 예방보다는 확실한 피해 사례가 있을 때 전문적인 수사에 따라 철저히 법적으로 처벌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스타트업이 투자사나 대기업과 미팅에서 NDA(기밀유지협약)는 필수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최 대표는 "일부 대기업이나 투자사는 NDA 작업이 번거롭다며 피하려고 하는데 이런 만남은 스타트업이 무조건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알고케어의 경우에는 알고케어 측에서 롯데헬스케어에 NDA를 체결하자고 했지만 당시 롯데헬스케어 측은 롯데헬스케어 법인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NDA를 체결을 거부했다고 알고케어는 주장했다.

김주완/최다은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