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체증만 생각하면 고향 가는 길은 고단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가족을 만나는 즐거움이 그 어떤 불편함도 이겨내게 한다.
그리고 소소한 기쁨이 하나 더 있다. 고향의 명소를 찾는 즐거움이다. 요즘은 전국 방방곡곡이 빠르게 변한다.한적한 시골 마을도 마찬가지다. 혁신가들이 모여들어 지역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고, 공간을 창조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도 아름답지만, 때론 사람의 손을 거쳐 조금 더 안락하고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한다.
이번 설 연휴엔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 친척들과 함께 ‘우리 고향 재발견’을 해보면 어떨까.내가 나고 자란 곳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자랑할 만한 것이 조금 더 늘어나는 건 덤이다.
경기도 연천 - 전곡선사박물관, 인류 최초의 역사를 찾아서
스무고개를 백 번, 천 번을 해도 풀 수 없는 태초의 세상. 과연 인류는 처음부터 완전체로 빚어졌을까, 조금씩 진화했을까. 1978년 연천군 전곡리에서 발견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고인류가 아프리카를 넘어 전 세계로 이동한 증표로 작용했다. 이를 기념해 2011년 개관한 전곡선사박물관에는 인류 진화의 열쇠가 숨겨져 있을지도. 상설전시실의 ‘인류 진화의 위대한 행진’ 맨 앞자리에 서 있는 건 두 발로 당당히 서 있는 ‘루시’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스칼릿 조핸슨 분)가 280만 년의 시간을 거슬러 만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 인류의 조상이 정말 당신인가요? 두 눈을 응시해본다.
강원도 태백 - 검룡소와 황지,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
강원 태백에는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가 자리한다. 그중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황지는 세 개의 연못을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돼 휴게공간으로도 그만이다. 일몰 무렵에는 오색조명이 켜지며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공원 코앞에는 수십 년 내공을 자랑하는 실비집도 찾아볼 수 있다. ‘실비’란 정육점 소매가로 한우를 제공한다는 뜻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한우를 제공한다는 태백만의 자부심이 담겨 있다. 은은한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사장님이 오픈 키친(?)에서 바로 썰어주는 고기를 한 점씩 구워 먹으면 무엇과도 바꿀 기쁨이 없다.
충남 공주 - 송곡저수지, 탄성 자아내는 호수의 설경
송곡소류지, 불장골저수지로도 불리는 공주 반포면의 ‘핫 플레이스’다. 봄에는 저수지 주변으로 분홍 벚꽃이 만발해 젊은 연인들이 기념사진을 남기는 데 여념이 없고, 여름에는 수변에 고개를 늘어뜨린 수양버들이 멋을 자아낸다. 울긋불긋 가을 단풍은 말해 무엇. 겨울에는 호수에 하얀 설경이 피어나 탄성을 자아낸다. 저수지 안쪽에는 카페 엔학고레가 자리한다. 성경에서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얻은 샘이 엔학고레. 송곡저수지를 찾은 대부분이 카페 야외 공간에서 인증 사진을 남긴다. 주말에는 특히 분주하며, 저수지에서 카페 방향으로 난 도로가 좁으니 차량 방문 시 참고하자.
경기도 가평 - 이탈리아마을, 거대한 피노키오가 두팔 벌려 환영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이국적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는 테마파크. 녹음이 우거진 새덕산 자락을 끼고 달리다 보면 파스텔톤 건물이 즐비한 이탈리아마을 ‘피노키오와 다빈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청평호가 내려다보이는 약 1만 평 부지, 청정 자연에 있는 이곳은 콜로디재단과 정식 제휴를 맺은 국내 유일의 테마파크다.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피노키오가 팔 벌려 맞이하고,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의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기자기한 풍경이 펼쳐진다. 필수 스폿은 전망대. 오렌지색 지붕 사이로 반짝이는 청평호 전경이 고개를 빼꼼 내민다.
대구 - 옥연지 송해공원, 목소리가 들린다. 전국~ 노래자랑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송해는 대구 달성군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 백년가약을 맺은 아내의 고향이 달성군 기세리인 까닭이다. ‘전국노래자랑’의 MC로 국민적 사랑을 받은 그는 향년 95세로 옥연지가 바라보이는 공원 인근에 아내와 함께 영면했다. 인자한 미소로 각계각층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그를 생각하며 오늘도 사람들은 송해공원을 찾는다. 백세까지 무병장수하길, 옥연지 한가운데 백세정은 달밤에 황홀한 빛을 발한다. 송해공원의 여러 명소 중에서도 단연 백미로 오전부터 음악분수를 가동하고, 일몰 무렵에는 조명이 켜지며 야경명소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전북 - 고창읍성, 흥미로운 전설…답성놀이
고창읍성은 조선시대 왜적으로부터 호남 내륙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했다. 자연석 성곽으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읍성이다. 정문인 공북루 안으로 들어서면 성 밖에서는 예상치 못한 내부 규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고창읍성에는 흥미로운 전설도 전해진다. 세시풍속으로 이어진 답성놀이로 머리에 돌을 이고 읍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리 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것이다. 온 가족의 건강을 바라며 답성놀이에 나서보는 것도 뜻깊을 것이다. 관광안내소에서 무료로 한복을 대여할 수도 있으니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