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에 뜯긴 돈, 수도권서만 최소 1361억

건설사들 보복 두려워 신고못해
건설사가 최근 3년간 건설노조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준 월례비(월급 외에 관행적으로 주는 돈)가 수도권에서만 최소 136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19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철근콘크리트 서울·경기·인천사용자연합회가 회원 건설사 49곳을 대상으로 2020년 1월 1일부터 이달 18일까지 706개 건설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기사에게 지급한 월례비를 집계한 결과 1361억842만원에 달했다. 연합회 관계자는 “조사에 참여하지 않은 47개 회원사를 고려하면 2000억원을 훨씬 웃돌 것”이라며 “전국으로 넓히면 수치는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국토교통부도 지난 2주간 건설 현장 불법행위 피해 사례를 조사한 결과 총 290개 업체로부터 2070건의 피해 사례를 접수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피해 유형을 보면 ‘월례비 요구’(1215건·58.7%)와 ‘노조전임비 강요’(567건·27.4%)가 대부분이었다. 계좌 지급 내역으로 확인한 건설사 피해액만 3년간 1686억원이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건설사들이 보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했다”며 “노조 횡포가 건설사의 자포자기,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겠다”고 했다.

상납하듯 뜯기는 월례비…3년새 月 200만원→700만원
공사 지연·보복 두려운 건설사, 뒷돈 강요에도 신고조차 못해

건설사들은 공사 지연을 막기 위해 타워크레인 기사들에게 수시로 돈을 쥐여준다. 이들이 일을 안 하면 공사 현장이 곧바로 ‘셧다운’되기 때문이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자재를 천천히 인양하거나 인양을 거부하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공기를 맞추기 위해 월례비를 내주는 사례가 많다.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A건설사는 2019년부터 4년간 타워크레인 조종사 44명에게 월례비 등 명목으로 38억원을 지급해야 했다. 건설 현장 관계자는 “타워크레인은 무거운 건설 자재를 옮기는 등 공사 초기부터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월례비는 노조가 건설 현장소장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방식으로 책정되는 게 일반적이다. 1980년대 ‘담뱃값’이나 ‘식사비’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월례비는 매년 액수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2019년 1인당 월 200만~500만원 수준이던 월례비는 최근 700만원 안팎으로 치솟았다. 현장 노조의 협상력에 따라 100만~200만원가량 ‘웃돈’이 더해지기도 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월 900만원까지 요구하는 현장도 있다”고 전했다. 대부분 현장에서 월례비가 이미 월급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건설사들은 ‘노조의 보복’이 두려워 제대로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 타워크레인 조종사는 대부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분과(조합원 3000여 명)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전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조(2000여 명) 소속이다.최근 부진한 건설 업황에 월례비 부담까지 겹쳐 중소형 건설사는 ‘울상’이다. 원자재값과 인건비 상승 부담이 큰 데다 월례비까지 줘야 하는 상황이 겹치면서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는 19일 대한건설협회,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 건설업계 단체와 만나 ‘건설 현장 불법행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이광식/곽용희/김은정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