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겸허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말 '메멘토 모리'[김희경의 영화로운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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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미술사가 한눈에 펼쳐집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부터 산드로 보티첼리, 한스 홀바인, 얀 반 에이크까지 유명 화가들의 명작이 연이어 나오죠.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압도적인 아우라에 감탄하게 됩니다.
영국 내셔널 갤러리의 주요 작품과 이야기를 담은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 '내셔널 갤러리'(2016)입니다. 내셔널 갤러리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작품 복원 과정과 갤러리 운영 방식 등도 엿볼 수 있습니다. 1824년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에 설립된 내셔널 갤러리는 국가 주도로 탄생한 영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입니다. 이곳에선 2400여 점에 달하는 명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가야 할 명소로 꼽히죠. 다큐에선 다양한 명화 중 독일 출신의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의 작품들이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홀바인이란 이름이 생소한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의 대표작 '대사들'을 보면 익숙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평범한 초상화 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내포한 작품으로 유명하죠.
한스 홀바인이란 이름의 인물은 미술사에 두 명이 있습니다. 종교화로 명성을 떨친 아버지 한스 홀바인, 그리고 그의 차남이자 16세기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로 꼽히는 한스 홀바인입니다. '대사들'을 그린 인물은 아들 한스 홀바인입니다. 그는 형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형을 능가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이탈리아의 다빈치 등 다른 나라 화가들의 미술 세계와 작품들도 꾸준히 접했죠. 그는 개방적인 태도로 다양한 기법을 익히고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그는 스위스 바젤로 옮겨 가 결혼까지 했지만, 종교 개혁의 여파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종교 개혁으로 인해 성상 파괴가 일어나고 예술가에 대한 탄압과 검열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29세에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홀바인은 다행히 영국에서 자리 잡고 부유한 상인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의 초상화 등을 그리는 궁정화가가 됐죠.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의 모습은 주로 화려한 장식과 어깨가 잔뜩 부풀어 오른 소매의 옷을 입고 있는데요. 홀바인은 이를 활용해 위풍당당하고 권위 있는 왕의 모습을 부각했습니다. 표정 또한 근엄하게 그려 왕의 위엄을 강조했습니다. 홀바인의 대표작인 '대사들'과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은 그가 35~36세가 되던 해에 탄생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초상화로, 홀바인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대사들'에 있는 왼쪽 인물은 프랑스 대사 장드 당트빌이며, 오른쪽 인물은 프랑스 주교 조르주드 셀브입니다. 멋진 옷차림과 선반 위에 깔린 고급 융단만 봐도 이들의 높은 지위와 부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반 위 해시계, 천구의(별자리 위치를 지구면 위에 새긴 것) 등은 두 사람의 지식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암시하죠. 해시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시간이 맞춰져 있으며,'새로운 발견'을 의미합니다. 천구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뜻하죠. 선반 아래엔 줄이 끊어진 류트가 보이는데요. 이는 구교와 신교의 종교 전쟁을 의미합니다. 류트 옆에 있는 찬송가는 신·구교의 원만한 화해를 기원하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겁니다.
그렇다면 당트빌과 셀브 두 사람의 나이는 몇살일까요? 얼굴만 보고 짐작하긴 어렵습니다. 당트빌이 들고 있는 단검엔 29, 셀브가 기댄 책엔 24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요. 이 숫자들이 두 사람 각각의 나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강렬하게 매료된 결정적인 비결은 그림의 중간 아래쪽 해골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그린 초상화에 해골이 나온다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대체 왜 해골이 그려져 있는 걸까요.
해골은 다른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죽음'을 상징합니다. 나아가 홀바인은 해골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죽음은 피해 갈 수 없으며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메멘토 모리는 누구나 결국엔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골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봐야 정확히 보이실 텐데요. 측면에서 봐야 형태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 기법을 적용한 겁니다. 해골을 보려 시선의 각도를 바꾸는 순간, 그림 전체가 일그러져 보이는데요. 이 관점에서 보면 인생을 가득 채워주는 풍요도, 이를 추구하는 욕망도 모두 덧없는 환상과 같죠.
하지만 홀바인이 그림을 통해 하려는 말은 죽음의 공포에 갇혀 불안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그림의 왼쪽 맨 위, 커튼으로 가려진 채 살짝 보이는 은빛 십자가는 이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며 뜻깊게 보낼 수 있겠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홀바인의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엔 인물이 상인임을 나타내는 상징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고급 융단으로 덮은 탁자와 동전통을 보면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죠. 시계는 그가 상인으로서 정확한 시간과 신용을 중시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동전통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듯 말 듯 테이블 모서리에 걸쳐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 또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그림은 상인의 약혼녀에게 보내진 초상화로 추측되고 있는데요. 약혼을 의미하는 카네이션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카네이션이 이미 살짝 시들어 있습니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뜻하죠. 꽃이 담긴 유리 꽃병 또한 깨지기 쉽다는 점에서, 사랑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선반 아래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후회 없는 쾌락은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성공한 상인을 둘러싼 수많은 유혹, 그리고 이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젊은 상인의 태도를 함께 보여줍니다. 홀바인도 궁정화가로서 활동하며 큰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은 바젤에 남겨두고 홀로 타지 생활을 하며 고독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았죠. 이런 홀바인의 결심이 그림 곳곳에 담긴 것이 아닐까요. 홀바인의 그림은 그렇게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줍니다. 삶을 겸허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말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도록.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영국 내셔널 갤러리의 주요 작품과 이야기를 담은 프레더릭 와이즈먼 감독의 다큐 '내셔널 갤러리'(2016)입니다. 내셔널 갤러리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작품 복원 과정과 갤러리 운영 방식 등도 엿볼 수 있습니다. 1824년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에 설립된 내셔널 갤러리는 국가 주도로 탄생한 영국 최초의 국립 미술관입니다. 이곳에선 2400여 점에 달하는 명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런던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가야 할 명소로 꼽히죠. 다큐에선 다양한 명화 중 독일 출신의 화가 한스 홀바인(1497~1543)의 작품들이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홀바인이란 이름이 생소한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그의 대표작 '대사들'을 보면 익숙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평범한 초상화 처럼 보이지만, 다양한 상징과 의미를 내포한 작품으로 유명하죠.
한스 홀바인이란 이름의 인물은 미술사에 두 명이 있습니다. 종교화로 명성을 떨친 아버지 한스 홀바인, 그리고 그의 차남이자 16세기 독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초상화가로 꼽히는 한스 홀바인입니다. '대사들'을 그린 인물은 아들 한스 홀바인입니다. 그는 형과 함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형을 능가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이탈리아의 다빈치 등 다른 나라 화가들의 미술 세계와 작품들도 꾸준히 접했죠. 그는 개방적인 태도로 다양한 기법을 익히고 자신의 작품에 녹여냈습니다.
그는 스위스 바젤로 옮겨 가 결혼까지 했지만, 종교 개혁의 여파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종교 개혁으로 인해 성상 파괴가 일어나고 예술가에 대한 탄압과 검열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29세에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홀바인은 다행히 영국에서 자리 잡고 부유한 상인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헨리 8세와 그의 여인들의 초상화 등을 그리는 궁정화가가 됐죠. 홀바인이 그린 헨리 8세의 모습은 주로 화려한 장식과 어깨가 잔뜩 부풀어 오른 소매의 옷을 입고 있는데요. 홀바인은 이를 활용해 위풍당당하고 권위 있는 왕의 모습을 부각했습니다. 표정 또한 근엄하게 그려 왕의 위엄을 강조했습니다. 홀바인의 대표작인 '대사들'과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은 그가 35~36세가 되던 해에 탄생했습니다. 두 작품은 모두 초상화로, 홀바인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대사들'에 있는 왼쪽 인물은 프랑스 대사 장드 당트빌이며, 오른쪽 인물은 프랑스 주교 조르주드 셀브입니다. 멋진 옷차림과 선반 위에 깔린 고급 융단만 봐도 이들의 높은 지위와 부유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반 위 해시계, 천구의(별자리 위치를 지구면 위에 새긴 것) 등은 두 사람의 지식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암시하죠. 해시계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시간이 맞춰져 있으며,'새로운 발견'을 의미합니다. 천구의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뜻하죠. 선반 아래엔 줄이 끊어진 류트가 보이는데요. 이는 구교와 신교의 종교 전쟁을 의미합니다. 류트 옆에 있는 찬송가는 신·구교의 원만한 화해를 기원하는 작가의 마음을 담은 겁니다.
그렇다면 당트빌과 셀브 두 사람의 나이는 몇살일까요? 얼굴만 보고 짐작하긴 어렵습니다. 당트빌이 들고 있는 단검엔 29, 셀브가 기댄 책엔 24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데요. 이 숫자들이 두 사람 각각의 나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강렬하게 매료된 결정적인 비결은 그림의 중간 아래쪽 해골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그린 초상화에 해골이 나온다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죠. 그런데 대체 왜 해골이 그려져 있는 걸까요.
해골은 다른 그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에서도 '죽음'을 상징합니다. 나아가 홀바인은 해골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의미를 담았습니다. 메멘토 모리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갖고 부유한 사람이라 해도, 죽음은 피해 갈 수 없으며 언제 어떻게 죽게 될지 알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메멘토 모리는 누구나 결국엔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해골은 정면이 아닌 측면에서 봐야 정확히 보이실 텐데요. 측면에서 봐야 형태가 또렷하게 드러나는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 기법을 적용한 겁니다. 해골을 보려 시선의 각도를 바꾸는 순간, 그림 전체가 일그러져 보이는데요. 이 관점에서 보면 인생을 가득 채워주는 풍요도, 이를 추구하는 욕망도 모두 덧없는 환상과 같죠.
하지만 홀바인이 그림을 통해 하려는 말은 죽음의 공포에 갇혀 불안하게 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겁니다. 그림의 왼쪽 맨 위, 커튼으로 가려진 채 살짝 보이는 은빛 십자가는 이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해 하며 뜻깊게 보낼 수 있겠죠.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인생에서 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홀바인의 '상인 게오르크 기체의 초상'도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림엔 인물이 상인임을 나타내는 상징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고급 융단으로 덮은 탁자와 동전통을 보면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죠. 시계는 그가 상인으로서 정확한 시간과 신용을 중시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동전통이 아슬아슬하게 떨어질 듯 말 듯 테이블 모서리에 걸쳐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부귀영화 또한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신기루 같은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 그림은 상인의 약혼녀에게 보내진 초상화로 추측되고 있는데요. 약혼을 의미하는 카네이션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카네이션이 이미 살짝 시들어 있습니다. 사랑의 유효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뜻하죠. 꽃이 담긴 유리 꽃병 또한 깨지기 쉽다는 점에서, 사랑도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벽에 걸린 선반 아래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후회 없는 쾌락은 없다"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성공한 상인을 둘러싼 수많은 유혹, 그리고 이 유혹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젊은 상인의 태도를 함께 보여줍니다. 홀바인도 궁정화가로서 활동하며 큰 부와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족들은 바젤에 남겨두고 홀로 타지 생활을 하며 고독함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 스스로를 다잡았죠. 이런 홀바인의 결심이 그림 곳곳에 담긴 것이 아닐까요. 홀바인의 그림은 그렇게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줍니다. 삶을 겸허하고, 찬란하게 만드는 말 '메멘토 모리'를 잊지 않도록.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