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자기야' 썼다가 탄광행?…북한 MZ세대들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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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인민회의서 '평양문화어보호법' 채택최근 북한 MZ(밀레니얼+Z)세대들 사이에서 이른바 '괴뢰식(남한식) 말투'를 따라 하는 문화가 급속히 퍼지자 북한 당국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하며 극약 처방에 나선 모양새다. 북한에서는 K-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향으로 '오빠', '남친(남자친구)', '자기야' 등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오빠','자기야' 등 남한식 말투 단속 강화
무기징역·사형, 탄광 배치 사례 있어
20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지난 17~18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평양문화어보호법'이 채택됐다. 이는 표준어인 평양말 이외의 남한말 등 외래어 사용을 금지하고 어길 시 강력히 단속하고 처벌한다는 것이 골자다.평양문화보호법 위반에 대한 공식적인 처벌 수위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는 2020년 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수준의 강한 처벌이 예상된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의 경우 남한 영상물 유포자의 최고 형량이 사형으로 상향됐고, 시청자의 최대 징역은 기존 5년에서 15년으로 강화됐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에는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다 적발된 북한 학생 7명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바 있다. 해당 드라마가 들어있는 USB 장치를 중국에서 들여와 판매하다 적발된 청년은 총살됐다. 같은 해 공군 및 대공군사령부 소속 직속 20대 군인들은 오락회에서 방탄소년단(BTS)의 '피땀 눈물' 춤을 췄다가 끌려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달 함경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 발언을 인용해 청진농업대 학생이 통화 도중 '자기야' 등의 남한식 말투를 쓰다가 적발돼 퇴학 처분을 당한 뒤, 탄광에 강제 배치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해당 사건은 도당위원회에 제기된 뒤 중앙에 보고돼 청진 시내 모든 대학생을 대상으로 남한 말투 사용 실태에 대한 검열이 진행되기도 했다. 당시 소식통 관계자는 "중앙에서는 남한 말투를 쓰는 현상을 원수들의 부르주와 사상과 문화 침투에 동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전했다.북한이 이번 '평양문화보호법'을 채택한 것은 단순히 언어적 측면을 넘어 남한의 문화에 대한 경계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령 채택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과 문화, 제도를 철저히 보호하고 체제 결속력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남한보다 훨씬 주체적이고 자주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언어 정책으로 표현하려는 모습"이라며 "최근 북한 MZ세대들이 남한식 말투뿐만 아니라 옷차림, 머리 모양을 하는 것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 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이번 법령 제정은 핵무기 개발에 가려졌을 뿐 아마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 것"이라며 "과거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당시에도 아나운서들이 무심코 '자기야'를 사용했다가 곧바로 잘리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에선 지난 13일 가수 정홍란의 '우리를 부러워하라'는 노래가 한국 걸그룹 '여자친구'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남한식 문화를 단속·통제만 할 수 없으니 "남한 노래보다 더 수준 높은 곡을 만들어라"라고 지시를 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