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텀, 다이브스, 엔펄스…" 뭐 하는 회사인지 감이 오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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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뭐해먹고' 사는지 모르게 이름 짓는 게 대세'이노베이션 마이크로웍스 다이브스 모멘텀 플로우 온….' 언젠가부터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회사 이름들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이들 사명 앞에 그룹이나 회사 명을 붙이면 좀 나아질까요. 차례로 SK이노베이션 SK마이크로웍스 대상다이브스 한화모멘텀 포스코플로우 SK온 입니다. 좀 감이 오시는지요.
사업간 장벽 사라지는 시대에 사명에 업태 제한 떼고 새로운 먹거리 발굴 차원
SK그룹이 시초…한화·두산·포스코 등도 뒤따라
애플·블랙베리·스타벅스 등도 거쳐간 길
"사명도 중요하지만 사업 자체가 기업성패 좌우"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
그룹명을 붙이니 사명은 익숙한 것 같은데, 여전히 이 회사들이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쉬운 건 아닙니다. SK이노베이션은 길가에 폴사인으로 많이 본 주유소에 들어가는 휘발유 정유 등을 생산하는 정유사업을 주로 합니다. SK마이크로웍스는 광학용 포장용 산업용 필름을 생산합니다. 대상다이브스는 대상F&B가 사명을 바꾼 회사로, 과일 커피 등을 생산 판매하는 식품회사고요, 한화모멘텀은 공식 회사명은 아니고 ㈜한화의 기계설비를 담당하는 사업부문인데, 사실상 독립된 회사처럼 인식되며 실제로 그렇게 취급됩니다. 포스코플로우는 옛 포스코터미널입니다. SK온은 요즘 핫한 2차전지(배터리) 회사입니다. 이처럼 정확히 하는 일을 인지하지 못하는 회사명들이 최근들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례도 많습니다. SK건설은 SK에코플랜트로 이름을 바꿨고, 한화종합화학은 한화임팩트란 이름으로 새 출발했으며, 현대사료도 카나리아바이오로 최근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두산공작기계는 DN솔루션즈로, LG니꼬동제련은 LS MnM으로 각각 사명을 조정했습니다. 한화테크윈도 한화비전으로 변신했습니다.문제는 요새 등장하는 새로운 사명들은 좀처럼 업태가 드러나지 않다는 겁니다. 과거의 사명은 딱 보면,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짐작이 가능한데, 바뀐 회사들은 검색을 하거나 공부를 따로 해야 합니다. 대부분 대기업이 많아 상장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식투자자들에겐 새 사명이 투자의 진입장벽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간판과 CI, 기업 홍보부터 작게는 직원들 명함까지 모두 교체해야 해서 비용도 듭니다. 그런데도 기업들은 이름을 이런 식으로 바꾸고, 또 이게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출발은 SK그룹..."업태 제한 벗어나 신성장동력 발굴"
이런 트렌드는 한국에선 SK그룹이 주도했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캐리커처)은 2019년 사내 행사인 이천포럼에서 "기업 이름에 에너지, 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기 힘들다"며 "과거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AI(인공지능)과 반도체 등의 발전이 시작되며 사업간 영역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시대를 맞아 SK의 각 계열사들이 사업 영역에 제한을 받지 않고 신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명부터 고려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이에 따라 SK에너지가 먼저 나서 SK이노베이션으로 사명을 바꿨고, 이후 SK온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 SK스페셜티(옛 SK머트리얼즈) SK엔펄스(옛 SK솔믹스) SK지오센트릭(옛 SK종합화학) SK엔무브(옛 SK루브리컨츠) 등이 뒤를 따랐습니다. 아예 새로 설립된 회사들도 이런 식의 사명짓기로 시작했습니다. SK어스온(SK이노베이션 물적분할 신설법인) SK디스커버리(SK케미칼 인적분할 지주사) SK스퀘어(SK텔레콤에서 분할된 투자전문회사) SK쉴더스(SK텔레콤 자회사 합병 신설법인) 등이 대표적입니다.SK그룹내에선 아직도 예전의 사명을 갖고 있는 곳이 많은데, 그래서 각 계열사들은 업태를 한정짓지 않고 친환경적인 사명을 아직도 고르고 있는 중입니다. SK그린 SK에코러스 SK휴모스트 등이 계열사들이 탐내는 이름인데 너무 작은 계열사가 'SK그린'이란 거창한 사명을 골라 건의해 그룹차원에서 반려했다는 후문도 들립니다.
SK그룹이 이런 식으로 움직이자 재계도 반응했습니다. 한화그룹은 한화모멘텀 한화임팩트 등의 사명이 등장했고, 두산그룹도 두산중공업이 두산에너빌리티로 바꿨습니다. 포스코도 일부 계열사가 사명 변경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런 식의 이름을 짓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재계의 고민은 명확합니다. 사업간 경계선이 허물어지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으로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스스로 업태를 규정지어 "'올드(OLD)해보이면서 신사업 진출을 스스로 제약하지 않도록" 사명부터 바꾸자는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수년 전 미국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스타벅스'커피'가 스타벅스로, 던킨'도너츠'가 던킨으로, 애플'컴퓨터'가 애플로 사명 뒤의 제약된 상품을 떼는 것으로 이미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도 한국야쿠르트가 최근 hy로, 할리스커피가 할리스로 사명을 교체했고, 기아자동차도 뒤의 차를 떼어내고 공식회사 이름을 기아로 바꿨습니다. 매일유업과 CJ제일제당 역시 현재 '유업'과 '제당'을 떼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대상F&B란 이름으로 스스로 식품회사임을 제약했던 회사가 대상다이브스(DIVE·뛰어들다)로 바꾸면서 식품의 제약없이 "고객의 일상 속 모든 곳에 함께 하는 기업이 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포스코터미널이 흐른다는 의미의 FLOW를 더해 포스코플로우로 다시 태어나면 "물류업무에 국한되지 않고 친환경 스마트 물류기업으로서 흐름을 만들어가는 기업이 되겠다"는 뜻이 되며, 한화에너지 자회사인 에스아이티는 한화컨버전스로 사명을 바꾸면서 "그린에너지 사업을 추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름보다는 결국은 업의 진정
하지만 모든 게 의도대로 되지만은 않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애플 스타벅스 등의 외국의 성공사례와 SK그룹의 사례만을 바라봤을 겁니다. SK그룹은 이 시기 자산 매출 시가총액 등의 면에서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삼성그룹에 이어 2위그룹으로 발돋움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컴퓨터'를 떼어내던 시기에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캐나다의 리서치인모션은 사명을 대표 제품인 블랙베리로 바꿨지만, 부진이 이어지다가 사업을 중단한 사례도 있습니다.결국엔 사명보다 업에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해 시장에서 승부를 보는 게 기업의 일이냐는 지적이 그래서 나옵니다. 한 재계 인사는 "사업에 성공하면 말이 안 되던 회사 이름도 그럴듯해 보이고, 망한 회사의 사명은 아무리 그럴듯해보여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서 "기업에 중요한 건 사업이지 사명은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명은 어린이와 청소년, 외국인이 봐도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우선"이라며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은 세계의 누가봐도 업태를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들 회사가 미래신성장 사업을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봤을 때 옛날 사명처럼 보일 수도 있는 현대자동차는 전기차 수소차 생산에 이어 UAM(도심항공모빌리티) 사업과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며 로봇 시장에도 뛰어들며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런 흐름에 대해 한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산업이 디지털 전환과 에너지 전환 등 대전환기를 마주하고 있는 만큼 이에 발맞춰 신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진출하겠다는 출사표를 내는 것”이라면서도 “과도하게 영어 단어를 조합한 사명 변경 사례들은 해외 투자자 입장에서도 정체성이 불분명한 느낌을 줄 우려가 있어 당위성을 확보하고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명 변경은 사업을 잘하기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지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는 지적들 같습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