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화도 대표 "백두대간은 안된다는 풍수지리 규제로 육상풍력 고사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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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력발전기 전문기업 유니슨 허화도 대표

매년 4MW터빈 30개 설치
원천기술 있지만 규제에 묶여

인허가 어렵고 주민 수용성 낮아
국내 풍력발전사 두 곳만 남아
“육상 풍력을 위해서는 ‘백두대간은 손대면 안 된다’는 식의 낡은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국내에서 그동안 가장 많은 풍력발전기를 설치한 회사인 유니슨의 허화도 대표(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국내 풍력발전 사업의 어려움에 관해 이같이 털어놨다. 허 대표는 2000년 유니슨에 입사한 초기 멤버 중 한 명이다. 중간에 다른 직업을 가진 적도 있지만 2011년 다시 돌아왔고, 2019년 대표 자리에 올랐다.유니슨은 한 해에 4㎿급 풍력 터빈을 30여 개 설치하는 회사다. 풍력발전에 관한 원천기술을 여럿 보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호남에 10㎿급 해상 풍력터빈 생산공장을 건설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개발에서 상용화까지 3년 넘게 걸렸다.

허 대표는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시장이 규제에 발이 묶여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나라 풍력시장 규모는 크게 봐도 200㎿에 불과하다”며 “어떤 해는 100㎿도 안 되는 등 들쭉날쭉한데, 인허가가 어렵고 주민 수용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넓은 부지가 아니어도 국내 육상풍력을 시도할 수 있는 산이 많이 있는데, 환경보호와 산림자원 활용이라는 명분 때문에 실제론 할 수 있는 곳이 아주 드물다”고 말했다.

그는 책상 유리 아래에 언제나 ‘산경도’를 깔아둔다. 산경도는 국내 산맥을 백두대간의 정맥, 지맥 등으로 분류한 것이다. 허 대표는 “풍수적인 이유를 담은 오래된 제도가 육상풍력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합리적인 이유는 납득할 수 있지만 허가권자들이 단지 백두대간 줄기라서 안 된다는 식으로 답하면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그는 “해외 업체와 국내 업체 간 기술격차가 있는 해상풍력 분야와 달리 육상풍력은 기술 격차가 거의 없다”며 “그러나 시장이 너무 작고, 안정적으로 수요를 예측할 수 없고, 가격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해 성장하기 쉽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2010년대 중반에는 삼성중공업, 현대중공업 등 국내 풍력발전 회사가 총 여덟 곳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유니슨과 두산중공업 두 곳밖에 남지 않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그는 전했다.

그는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해 “어떻게 ‘시장’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쉽게 금융 지원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펀드만 만들면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현장에서 부닥치는 것은 규제와 민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특히 지난 정부에 대해 “금융과 제도 신설에만 치우쳐 민원 규제 입지 등에 관해 진전된 게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해상풍력만 하라는 게 공무원들의 생각이지만, 해상에서도 어민들의 어업권 보장 문제 등이 있어 쉽지 않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화력발전소가 몰려 있는 동해안에서 전기가 많이 생산되고 서쪽의 수도권에서 주로 소비가 일어난다. 그러나 전기를 끌어 오려면 변전소를 세워야 해 비용도 많이 들고 에너지 손실이 크다. 허 대표는 “바다에서 전기를 끌어 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며 “태양광 대비 100분의 1밖에 면적을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도심지에 가까운 곳에서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육상 풍력발전을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손쉽게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허 대표는 “국내 업체에 연구개발(R&D) 등 여러 혜택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시장’”이라고 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