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조폭생활…"의리? 돈 많은 선배따라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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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조직 폭력배 A씨는 최근 동료 조폭이 오픈한 경기 수원시의 한 식당 개업식에 참석했다. 개업식에는 조직 폭력배 십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A씨가 찍은 사진에는 한겨울 임에도 반팔티를 입은 조폭이 여러명 있었고 이들 팔 다리에 짙게 새겨진 문신이 쉽게 눈에 띄었다. 모두 험상 궂게 생겼지만 A씨는 "다들 나이 들고 주먹질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아저씨들이다. 동네에서 가게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라며 "조폭 생활 10년이 넘었지만 깡패 집단 간 패싸움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실 깡패들은 주로 경조사 같은 개인 행사에서 서로를 만날 뿐, 함께 어떠한 일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종종 만나 소주 한잔 마시는 사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동료 행사에 자주 가야 내 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품앗이와 같은 개념이라고 했다.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경기남부지역 조직폭력배 B씨도 A씨 말이 실제 현실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B씨는 종종 '다른 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말라'는 식의 경고성 글을 SNS에 공개적으로 게시한다. B씨는 "나도 다른 조직원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 매출을 올려주는데, 다른 동료들도 내 가게에서 휴대전화를 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라며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라고 푸념했다.조폭이라 불리는 영화 속 폭력조직원들은 위계와 서열이 강하고 개인마다 의리가 있다는 인상이 있다. 흉기를 들고 집단 패싸움을 벌이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막대한 돈을 챙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오늘날 조폭은 수사기관의 엄격한 관리 등으로 인해 집단 간 패싸움이 사라진 지 십수 년이 흘렀다. 약 15년 전 인천 길병원 사건, 수원 역전·남문파 다툼 등 과거 조폭 간 집단 패싸움이 일어났지만 현재 큰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조직이 뒤를 봐줄 테니 대신 징역 생활을 해라'는 상명하복식의 집단 문화도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대신 지역 유흥가를 중심으로 술집, 식당 등 자영업 등에 종사하며 일종의 향우회처럼 친목 도모 수단으로 변했다. 일부 조폭들은 자신이 직접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폭 관련 드라마를 제작하고 토크쇼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번화가에 모인 여러 식당 중 '조폭 출신이 운영한다'고 소문이 주변에 날 경우, 다르게 보는 경우가 있어 자영업에 종사하는 조폭들은 마치 마케팅 수단처럼 이를 활용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집단 패싸움 등이 많았지만, 지금은 관리를 통해 사라진 이야기”라며 "선배들도 후배들을 한자리에 집합시키려면 알바비처럼 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폭 중에서도 싸움 등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유명해진 경우도 종종 나온다. 쌍방울 그룹의 실 소유주로 알려진 김성태 전 회장의 경우도 조폭 출신으로 세간에 유명해 졌다. 전북 남원지역 출신인 그는 과거 전북 전주지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했으며 지난 2006년 불법도박장을 운영해 기소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부업 등으로 돈을 벌다가 2010년 경영난을 겪던 쌍방울 그룹을 인수했다. 경찰은 현직 조폭의 경우 '관리 명단'을 매년마다 만들어 전국 조폭을 별도로 관리하는데, 김 회장은 현재 경찰의 관리 명단에 속해있지 않다. 쉽게 말해 젊었을 적 조폭이었고, 현재 해당 업에 손을 뗀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 내 강력범죄수사대(과거 광역수사대) 등 조직에서 신규 조폭을 발굴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범죄단체를 발굴하려 합숙생활 현장 확인, 두목 부두목 행동대장 등 조직 내 체계화 된 위계질서 등 몇 가지 요건이 있는데, 최근의 경우 과거 조폭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폭을 동경하는 'MZ세대' 젊은 층들도 과거처럼 윽박지르거나 각목으로 체벌하는 등 군대식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조폭들은 직장 수습사원처럼 20대 초 중반 당시 한 집에서 단체로 숙식하며 지내는 생활을 거쳤지만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신규 범죄단체가 발굴될 경우 경찰 해당 부서에서 승진 등에 유리하지만, 전 처럼 경찰이 조폭 집단 활동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조폭에 잠깐 가담했다가 생활에 못견뎌 나가는 젊은 층도 많이 나타난다. '손 가락을 잘라야 탈퇴할 수 있다' 등은 현실에서 나오기 어렵다.
대신 일부 조직에서는 나이든 사업가들이 조폭으로 합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조폭들에게 용돈 등을 챙겨주며 환심을 사면서 조직원에 뒤늦게 끼어들고 어울리는 것이다. 경찰 관리 명단에는 없지만 조폭과 함께 어울리는 이들을 '조폭 추종자'라고 부른다. 조폭 추종자인 인천의 사업가 D씨는 "조폭이라고 싸움하는 단체는 아니기 때문에 실제 주먹 쓸 일도 없다"며 "사람 사귀는게 좋아서 가입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오랜 기간 조폭을 했지만 돈이 없어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할 경우 생활 기간과 상관없이 되려 무시를 당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조폭을 추종하는 이들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조폭의 성격이 변했을 뿐 집단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만희 국회의원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까지 해마다 경찰에 검거되는 조폭은 전국적으로 1844~2186명 정도 된다. 10대 조폭의 경우 96~187명이 해마다 검거되는 추세다. 경찰 공무원 출신 이 의원은 "고급 외제차, 허세샷, 단체 활동 등을 동경하는 10대 비행청소년들이 여전히 많다"며 "유튜브 등 개인방송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이들의 모습을 동경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요새 조폭들도 범죄 혐의점이 있어 불러 조사하려 해도 묵비권을 행사한다"며 "다만 경찰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두지 않으면 조폭들도 과거처럼 일반인을 괴롭히고 지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
그러면서 A씨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동료 행사에 자주 가야 내 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품앗이와 같은 개념이라고 했다. 휴대전화 매장을 운영하는 경기남부지역 조직폭력배 B씨도 A씨 말이 실제 현실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B씨는 종종 '다른 매장에서 휴대전화를 개통하지 말라'는 식의 경고성 글을 SNS에 공개적으로 게시한다. B씨는 "나도 다른 조직원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 매출을 올려주는데, 다른 동료들도 내 가게에서 휴대전화를 사는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느냐"라며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라고 푸념했다.조폭이라 불리는 영화 속 폭력조직원들은 위계와 서열이 강하고 개인마다 의리가 있다는 인상이 있다. 흉기를 들고 집단 패싸움을 벌이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하며 막대한 돈을 챙긴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오늘날 조폭은 수사기관의 엄격한 관리 등으로 인해 집단 간 패싸움이 사라진 지 십수 년이 흘렀다. 약 15년 전 인천 길병원 사건, 수원 역전·남문파 다툼 등 과거 조폭 간 집단 패싸움이 일어났지만 현재 큰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조직이 뒤를 봐줄 테니 대신 징역 생활을 해라'는 상명하복식의 집단 문화도 나타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대신 지역 유흥가를 중심으로 술집, 식당 등 자영업 등에 종사하며 일종의 향우회처럼 친목 도모 수단으로 변했다. 일부 조폭들은 자신이 직접 유튜브 채널을 통해 조폭 관련 드라마를 제작하고 토크쇼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번화가에 모인 여러 식당 중 '조폭 출신이 운영한다'고 소문이 주변에 날 경우, 다르게 보는 경우가 있어 자영업에 종사하는 조폭들은 마치 마케팅 수단처럼 이를 활용한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집단 패싸움 등이 많았지만, 지금은 관리를 통해 사라진 이야기”라며 "선배들도 후배들을 한자리에 집합시키려면 알바비처럼 돈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폭 중에서도 싸움 등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사회적으로 유명해진 경우도 종종 나온다. 쌍방울 그룹의 실 소유주로 알려진 김성태 전 회장의 경우도 조폭 출신으로 세간에 유명해 졌다. 전북 남원지역 출신인 그는 과거 전북 전주지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했으며 지난 2006년 불법도박장을 운영해 기소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부업 등으로 돈을 벌다가 2010년 경영난을 겪던 쌍방울 그룹을 인수했다. 경찰은 현직 조폭의 경우 '관리 명단'을 매년마다 만들어 전국 조폭을 별도로 관리하는데, 김 회장은 현재 경찰의 관리 명단에 속해있지 않다. 쉽게 말해 젊었을 적 조폭이었고, 현재 해당 업에 손을 뗀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경찰 내 강력범죄수사대(과거 광역수사대) 등 조직에서 신규 조폭을 발굴해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행법상 범죄단체를 발굴하려 합숙생활 현장 확인, 두목 부두목 행동대장 등 조직 내 체계화 된 위계질서 등 몇 가지 요건이 있는데, 최근의 경우 과거 조폭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폭을 동경하는 'MZ세대' 젊은 층들도 과거처럼 윽박지르거나 각목으로 체벌하는 등 군대식 문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 조폭들은 직장 수습사원처럼 20대 초 중반 당시 한 집에서 단체로 숙식하며 지내는 생활을 거쳤지만 현재는 사라진 상태다. 신규 범죄단체가 발굴될 경우 경찰 해당 부서에서 승진 등에 유리하지만, 전 처럼 경찰이 조폭 집단 활동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조폭에 잠깐 가담했다가 생활에 못견뎌 나가는 젊은 층도 많이 나타난다. '손 가락을 잘라야 탈퇴할 수 있다' 등은 현실에서 나오기 어렵다.
대신 일부 조직에서는 나이든 사업가들이 조폭으로 합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조폭들에게 용돈 등을 챙겨주며 환심을 사면서 조직원에 뒤늦게 끼어들고 어울리는 것이다. 경찰 관리 명단에는 없지만 조폭과 함께 어울리는 이들을 '조폭 추종자'라고 부른다. 조폭 추종자인 인천의 사업가 D씨는 "조폭이라고 싸움하는 단체는 아니기 때문에 실제 주먹 쓸 일도 없다"며 "사람 사귀는게 좋아서 가입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오랜 기간 조폭을 했지만 돈이 없어 후배들에게 용돈을 주지 못할 경우 생활 기간과 상관없이 되려 무시를 당하기 일쑤라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조폭을 추종하는 이들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조폭의 성격이 변했을 뿐 집단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만희 국회의원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2022년 까지 해마다 경찰에 검거되는 조폭은 전국적으로 1844~2186명 정도 된다. 10대 조폭의 경우 96~187명이 해마다 검거되는 추세다. 경찰 공무원 출신 이 의원은 "고급 외제차, 허세샷, 단체 활동 등을 동경하는 10대 비행청소년들이 여전히 많다"며 "유튜브 등 개인방송에 활발히 진출하면서 이들의 모습을 동경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요새 조폭들도 범죄 혐의점이 있어 불러 조사하려 해도 묵비권을 행사한다"며 "다만 경찰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두지 않으면 조폭들도 과거처럼 일반인을 괴롭히고 지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