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로 징역 살게 해주겠다"…직원 으름장에 노이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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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울산의 A 환경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나도록 안전관리 직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기존 4명의 안전관리 직원이 대기업에 스카우트되면서 전담 인력이 없는 불법 업체로 낙인찍힐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법률 모호, 안전인력 부족 심각"
내년부턴 50인↓사업장까지 확대
중기 94% "준비기간 부여해야"
경남의 B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노이로제가 걸렸다. 퇴근 후 회사에서 전화가 오면 사고가 났을까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흐른다고 한다. 그는 "지난 1년간 사고 걱정으로 현장 순찰만 수백번 돈 것 같다"고 한탄했다. "걱정만 앞선 나머지 미래 전략이나 혁신, 생산성 향상 계획은 모두 내팽개쳤다"는 하소연이다.대전의 건설·기계 장비업체인 C사 대표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출근하는 근로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출근 시간 음주 측정을 도입했지만 반발하는 직원들로부터 "일부러 다쳐서 중대재해법으로 징역을 살게 하겠다"는 협박을 당했기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사고로 대표이사에게 '징역형'의 형사처벌을 가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초강력 산업안전 규제(중대재해법)가 오는 27일 시행 1년을 맞는다. 중소기업계에선 중대재해법의 모호성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과 함께 전문인력 부족과 비용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대표의 99%가 오너인 중소기업의 경우 한 번의 사고가 곧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탓에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겪는 스트레스가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중기업계 관계자들은 "법을 지키고 싶어도 인력과 자금력이 부족한 형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뿌리업체 대표는 "중소기업은 외국인 근로자 비율이 높고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데다 경기침체로 살아남기도 어려운 상태"라며 "생산에 투입할 인력도 없는데 안전 업무 담당자를 어떻게 구하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자동차부품업체 대표는 "손 하나가 부족한 실정인데 중대재해법 대응하려 생산직 인력을 빼 한 달간 수백장의 서류 작업을 시켰다"며 "신입사원이 안전 관련 자격증을 따게 시키고 싶어도 나중에 이직할까 두렵다"고 말했다.중대재해법 시행령에 따르면 50인 이상 기업은 무조건 산업안전 관련 전문 인력(안전관리자)을 갖춰야 한다. 그럴 형편이 안 되면 외부 전문기관에 관련 업무를 위탁해야 한다. 이를 위반한 상태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과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안전전문가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들의 연봉은 웬만한 중소기업 임원 연봉보다 높다. 4~5년 이상 경력자의 경우 8000만~9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게 일반적이다. C사 대표는 "시공을 할 때마다 전문 노무사에 1000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추가 부담해야 하고 전문 안전관리사까지 배치해 인건비가 너무 부담된다"고 털어놨다.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77%는 중대재해법 대응 여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응 여력이 부족한 이유로는 '전문인력 부족(47.6%)'이 가장 많았으며 '법률 자체의 불명확성(25.2%)' '과도한 비용 부담'(24.9%)' 등이 뒤를 이었다. 중대재해법이 중소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 영향(63.5%)'이란 답변이 '긍정적 영향(28.0%)' 답변의 두 배 이상 많았다.
중대재해법은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영세기업들은 법 시행에 대비할 여력이 없다고 애로를 호소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93.8%는 '준비기간 부여 또는 법 적용 예외'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중소기업계는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시행을 2년간 유예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이명로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내년 중대재해법 대상이 되는 50인 미만 사업장은 68만 개로 50인 이상 사업장의 15배에 달한다"며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아 안전에 대해 투자할 여력이 없는 곳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민경진/안대규/강경주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