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체 창고에 있던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나에 정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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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아트센터 29일까지 전시“무슨 예수상이 이렇게 무섭고 투박해요.”
"작품 무섭다" 교회서 버림 받아
작가 사후 뒤늦게 '걸작'으로 조명
1970년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서울 동선동 작업실. 작품을 의뢰한 교회 관계자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사진)가 완성됐다는 연락을 받고 들뜬 마음으로 달려왔는데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어서다. 이들이 주문했던 조각상의 모습은 성스러운 ‘신의 아들’. 하지만 예수의 얼굴은 잿빛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질감은 거칠었다. 결국 교회 측은 ‘반품’을 선언했다.지금이야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리는 한국 최고의 근현대 조각 거장으로 인정받지만, 당시 권진규는 가난한 무명 조각가에 불과했다. 조각상은 그런 권진규가 모처럼 받은 일감이었다. 그는 좌절했다. 작품은 어디 보낼 곳이 없어서 작업실 벽에 걸어뒀다. 3년 뒤 그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십자가 위 그리스도’가 내려다보는 곳에서였다.
50년이 지난 지금 조각상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3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신소장품전 2022’에 나와 있다. 가나문화재단이 지난해 구입한 소장품을 소개하는 전시다.
조각상이 가나문화재단 손에 들어가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30년 넘게 유족이 보존하는 작업실에 걸려 있었던 이 작품은 권진규미술관 건립이 두 차례 불발되면서 한때 대부업체 창고에 보관돼 있었다. 그러다 2019년 소송을 통해 유족에게 반환됐고, 이호재 가나아트·서울옥션 회장이 구입을 결정하면서 지난해 12월 중순 재단에 인도됐다. 이보름 가나문화재단 큐레이터는 “권진규의 대표작이자 가장 큰 작품을 소장하게 돼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예수상 외에도 전시장에는 박생광, 손응성, 변종하, 문미애 등 한국 근현대 미술 주요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나와 있다. 그중 한쪽에 걸린 ‘도도새 작가’ 김선우(35)의 대작이 눈에 띈다.
바로 옆 가나아트센터 1,2 갤러리에서 열리는 ‘진품 고미술 명품 이야기’도 함께 둘러볼 만한 전시다.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으로 유명한 양의숙 예나르 대표의 소장품전이다. 45년 전 양 대표가 첫 아이를 출산했을 때 어머니가 기저귀를 담으라고 제주도에서 직접 가져온 반닫이를 비롯해 따뜻한 사연이 담긴 소박한 유물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두 전시 모두 29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