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센서 달아도 직원이 꺼버리는데…中企 CEO '중대재해 포비아'

中企에 더 가혹한 중대재해법
모든 사고 책임은 사장 몫?
충남지역 한 용기 제조업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과 함께 생산라인 작업자를 대상으로 휴대폰 수거함을 만들었다가 근로자의 반발로 철회했다. 현장 안전을 위해 모든 차량에 후방센서와 사각지대용 카메라도 달았지만 직원들이 “작업 속도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며 장치를 꺼버리는 사례가 많아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았지만 주요 중소기업 현장에선 실질적인 사고 예방 효과가 크지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무엇보다 안전 규정 위반 시 사업주만 처벌하고 근로자에겐 이렇다 할 제재 수단이 없는 ‘반쪽 규정’에 대한 불만이 많다.

○“근로자가 법 안 지키면 무슨 수로…”

중대재해법에서 사고의 책임은 사업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단 한 번의 사망사고라도 발생하면 사업주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여기에 법인 벌금,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4중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중기 현장에서 벌어지는 재해 상당수가 ‘근로자의 부주의 탓’에 빚어지는 현실엔 눈감았다는 지적이 많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실태조사’ 결과 산재사고 원인의 80.6%를 ‘근로자 부주의 등 지침 미준수’가 차지했다.

실제로 사업주가 안전장치를 강화해도 근로자가 이를 무시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수도권 한 플라스틱제조업체 대표는 지난해 60개 대형 설비에 자동정지 센서를 달았다. 거액을 들여 안전 시스템을 강화했지만 근로자들은 이마저도 “불편하다”며 임의로 코드를 뽑고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업체 대표는 “안전 수칙을 어긴 근로자에겐 아무런 처벌 수단이 없고 사업주만 형사 처벌하는데 어떻게 안전이 지켜지냐”고 호소했다.중기 업계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근로자의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안전 수칙 미준수 시 처벌 등 불이익 조치가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중대재해 사건 전문 변호사는 “독일은 안전 수칙을 어긴 근로자를 처벌하는 등 선진국은 노사 공동 책임을 강조하는 추세”라며 “한국은 대부분 15만원 이하 과태료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회사가 대신 내는 실정”이라고 했다.

○‘태풍의 눈’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중대재해법을 둘러싼 중기 현장의 혼란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내년 1월 27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기업으로 중대재해법이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50인 이상 기업도 현실과 동떨어진 법 규정 때문에 좌충우돌을 거듭하는 상황에서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으로까지 중대재해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많다. 경남의 한 용접기자재 업체 대표는 “원자재값 상승, 인력 부족, 금리 인상 등 눈앞에 닥친 압박이 많은데 중대재해법에 대응할 자금, 시간, 인력 여력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이 68만 개에 달하는 점도 고민이다. 4만6000개 50인 이상 사업장 관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영세 사업장으로의 법 적용 확대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중기 업계에선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선 2년간 중대재해법 적용 유예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중기중앙회 조사 결과 50인 미만 사업장의 93.8%가 ‘준비 기간 부여 또는 법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답했다.정부는 올해부터 50인 미만 사업장 1만6000곳에 대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원 물량이 전체 사업장 수 대비 약 2%에 불과하다. 이명로 중기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은 “20조원 넘게 쌓인 산재보험기금을 활용해서라도 정부가 영세기업의 안전 기반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경진/강경주/안대규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