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펀드의 배신…"40% 손실인데 환매도 못해요"

운용사 환매 2년 연기 추진
투자자들은 집단소송 검토
국내 대표 유전펀드로 통한 ‘한국패러랠펀드’가 올해 3월로 다가온 10년간의 펀드 만기를 앞두고 투자금의 40%를 날릴 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 운용사는 남은 투자금이라도 돌려주기 위해 현금화를 시도했지만 이조차 여의치 않아 환매 시점을 2년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5일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오는 3월 만기가 돌아오는 ‘한국투자패러랠유전해외자원개발특별자산투자회사1호’(한국패러랠펀드)의 환매 시점을 2025년 3월로 미루기 위해 26일 펀드 임시주주총회를 연다. 폐쇄형 펀드인 한국패러랠펀드는 특수목적회사(SPC) 형태로 운용해 왔는데, 만기 시점 등 회사 정관을 변경하려면 주총이 필요해서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모든 투자자에게 주총 안건 설명 자료를 배포했다.환매 시점을 미루려는 것은 당장 투자자에게 돌려줄 돈이 없어서다. 설정 당시인 2013년 3월 4000억원에 달했던 펀드 규모는 현재 약 1600억원으로 쪼그라든 것으로 추정된다. 투자 대상 유전의 원유 매장량을 잘못 추정하고 투자 기간 동안 유가 하락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간 이뤄진 배당금 총액 약 800억원을 고려해도 투자금의 40%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매장량 엉터리 추정에 유전펀드 1600억 손실…투자자들 "불완전 판매" 반발

한국패러랠펀드가 출범하던 2013년 당시만 해도 지금과는 정반대의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삼성물산과 한국석유공사가 2011년 미국 사모펀드(PEF) 운용사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로부터 미국 텍사스 유전을 개발하는 패러랠페트롤리엄 지분 100%를 8억달러(약 9850억원)에 사들인 게 시작이었다. 이후 삼성물산은 2012년 말 이 지분 중 39%를 한국투자신탁운용(이후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으로 분할)이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에 매각했다.

운용사 측은 당시 “연평균 11%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자 모집에 적극 나섰다.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공모 당시 1조원에 가까운 돈이 몰리기도 했다. 당시 펀드는 NH투자증권, 삼성증권, 한화투자증권 등을 통해 판매됐다.하지만 2010년대 중반 유가가 하락하면서 손실이 커지기 시작했다. 판매 당시 운용사는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이 연평균 배럴당 89.5달러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WTI는 2014년 배럴당 100달러 선이 깨진 데 이어 2016년에는 3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이후 원유 가격은 상당히 회복됐지만 2019년 새로운 악재가 불거졌다. 한국패러랠펀드가 투자한 텍사스주 유전 매장량이 전년 말 추정치 대비 42.8%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자산 가치가 크게 급락한 것이다. 당초 추정한 만큼 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배당금도 약속한 만큼 지급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펀드 배당금 총액은 약 800억원이다. 현재 남은 펀드 가치 약 1600억원도 투자자산 가치가 아니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투자위험보증제도’에 따라 지급할 예정인 사업손실보험금을 반영한 가격이다. 앞으로 받을 보험금 외에 자산 가치는 거의 없는 상태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투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펀드 매각을 추진해왔지만 자산 가치 하락 등의 이유로 아직 성사시키지 못하고 있다.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운용사가 환매 연기까지 시도하자 투자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2013년 공모 당시 약속한 연 두 자릿수 이상의 수익은커녕 원금마저 찾지 못하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환매 지연에 대해서도 “2년간 운용 수수료만 더 낼 판”이라며 “운용사가 당장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총 5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라고 주장하면서 집단소송 등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실제 환매 시점에 손실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며 “추가 보험금 및 삼성물산으로부터 받는 손실보상 등으로 손해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한국무역보험공사 측 관계자는 “예상 금액 이상의 추가적인 보험금이 지급될 수 있을지는 아직 검토 초기 단계라 확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성상훈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