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무인기 영공에 날아들 때, 軍 '긴급상황 아니다'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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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동참모본부 전비태세검열 중간 결과 발표지난달 북한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했을 때 일선 부대에선 이를 '긴급 상황'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군 당국은 무인기가 대통령실이 있는 용산 지역을 촬영했을 가능성은 작다고 봤다.
"무인기, 용산 촬영 가능성 제한적"
26일 합동참모본부가 공개한 북한 무인기 관련 전비태세검열 중간 결과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25분께 무인기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올 당시 해당 항적을 포착한 육군 1군단의 실무자는 이를 긴급 상황으로 판단하지 않았다.해당 상황을 '수시보고' 대상으로 분류하면서 고속지령대와 고속상황전파체계 등 신속하게 상황을 알릴 수 있는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았다. 1군단이 상급 부대인 지상작전사령부(지작사)에 유선 보고한 오전 11시5분, 지작사가 합참에 보고한 11시11분이 모두 지나도록 신속 전파 체계는 사용되지 않았다.
군 당국은 "무인기가 MDL을 넘어온 이후 탐지와 소실이 반복됐기 때문에 긴급 상황이라고 재평가하는 과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고속상황전파체계는 전투정보상황실 근무 실무자나 작전 계통 참모 등이 지휘관 결심 없이도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긴급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한 탓에 이번 '북한 무인기 사태'에서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그사이 해당 무인기는 서울 상공으로 진입했다. 서울을 담당하는 수도방위사령부는 약 1시간이 지난 오전 11시27분께부터 자체적으로 이를 탐지하고 방공 작전에 나섰다. 수방사가 작전에 나선 시각은 레이더상 항적 포착에 이어 열상감시장비(TOD)로 추가 확인까지 거쳐 적 무인기로 추정할 근거를 확보한 시점이다.
합참 관계자는 "레이더에 1일 평균 2000여개 이상의 항적이 나타난다"며 "항적을 적 소형무인기라고 평가하기는 굉장히 제한되는 부분이 있어 결국 육안이나 TOD로 식별하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레이더에는 적 무인기나 항공기뿐 아니라 민항기, 새 떼 등 다양한 항적이 나타나므로 TOD 등으로 추가 확인을 거쳐야 한다는 설명이다.더욱이 1군단이 설령 고속상황전파체계 등으로 상황을 알렸더라도 수방사는 이를 바로 알 수 없는 상태였던 점이 이번 검열에서 드러났다. 1군단의 국지방공레이더로 포착한 항적은 방공지휘통제경보체계(방공C2A)를 거쳐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 등으로 연동될 수는 있으나 인접 부대인 수방사와는 연결돼 있지 않았다. 1군단이 포착한 항적이 수방사 담당 구역으로 이동하면 그동안 1군단이 추적한 항적 정보가 수방사로 바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뜻이다.군은 이번 사태 이후 1군단과 수방사 간 정보 연계가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또 국지방공레이더와 공군 MCRC 간 연동은 수동으로만 이뤄졌다. 국지방공레이더에서 잡아내는 수많은 소형 항적이 모두 공군 MCRC에 뜨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합참은 이번 전비태세검열에서 실무진부터 시작해 고위직에 이르기까지 제대별로 다양한 '과오자'를 파악했다. 고위직으로는 지상작전사령관, 수방사령관, 공군작전사령관, 1군단장 등이 언급됐다고 알려졌다.
군 당국은 영공을 침범한 무인기가 대통령실이 있는 서울 용산 일대는 촬영하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합참은 "비행 고도와 과거 무인기에 장착된 상용 카메라의 성능 등을 고려할 때, 용산 지역 촬영은 제한됐을 것"이라고 밝혔다.과거 북한 무인기들은 캐논 EOS 550D(2014년 3월 24일 파주 추락), 니콘 D800(2014년 3월 31일 백령도 추락), 소니 A7R(2017년 6월 9일 인제 추락) 등의 상용 카메라를 탑재했다.
무인기 침범 의도에 대해 군은 "아군의 대응 능력을 시험하며 우리 사회의 혼란을 조성하고, 아군의 사격에 의한 민간 피해와 우군기 피해를 유발하는 노림수가 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합참은 이번 북한 무인기가 과거 무인기들과 크기와 형상이 비슷하다고 했다. 기체 앞부분의 가솔린 엔진과 프로펠러, V자 형태의 꼬리날개, 주날개가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테이퍼형 직선날개 등이 비슷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무인기가 북한으로 귀환한 것으로 봤을 때 성능은 전에 비해 일부 개선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진영기 한경닷컴 기자 young71@hankyung.com